국민연금 WEBZINE 2014.FALL

사계절 여행기

가을을 닮아가는 길, 청송 주왕산 트레킹(유은영 여행작가) 가을에는 바람처럼 투명해지고 싶다. 나뭇잎처럼 가벼워지고 싶다. 그리고 생애 꼭 한번은 붉게 타오르고 싶다. 그렇게 가을과 하나가 되는 길, 청송으로 떠난다.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협곡, 주방천

주왕산을 빼고 단풍을 논하지 말라고 한다. 남한의 금강산이라 할 만큼 단풍이 곱다. 국립공원 중 면적이 가장 좁고 해발 721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기묘한 봉우리와 암벽으로 이루어진 흔치 않은 풍경을 품었다. 가을이면 주왕산을 찾는 발길이 분주해진다.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단풍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대전사에서 계곡 따라 3폭포에 이르는 주방천 트레킹 코스에서는 신이 빚은 놀라운 솜씨를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

주왕산 비경의 시작은 대전사다. 매표소를 지나 대전사 경내로 들어서면 입이 딱 벌어진다. 대전사 지붕 위로 왕관처럼 생긴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다.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대전사는 일주문도 없고 사천왕도 없지만 병풍처럼 두른 주왕산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경내의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고 주왕산의 봉우리들은 울긋불긋 색동옷을 입었다. 트레킹 시작부터 가을 풍경은 아낌이 없다.

대전사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선다. 편안한 산책길 옆으로 계곡이 함께한다. 곱게 물든 돌단풍으로 한껏 치장한 계곡 덕분에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주왕암, 학소대, 급수대, 시루봉 등 기이한 봉우리들이 연이어 나타나 눈을 즐겁게 한다. 인자한 할아버지 모습이 떠오르는 시루봉을 지나면 계곡이 서서히 좁아지며 수려한 바위 협곡으로 변한다. 고개를 들 때마다 아찔하게 현기증이 날 만큼 절경이다. 하늘은 손바닥만큼 좁아지고, 까마득히 솟은 석벽 사이사이 붉은 단풍은 한없이 도도하다. 협곡에 취해 걸음이 느려질 즈음 제1폭포가 등장한다.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소를 돌아 떨어져 ‘용추폭포’라 불린다.

제1폭포에서 1km 더 올라가면 제2폭포로 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200m 더 들어가야하지만 결코 그 발품을 아까워해서는 안된다. 그 길은 주왕산의 가장 아름다운 경치로 꼽힌다. 놓치면 후회할 만큼 울긋불긋 아름다운 협곡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2단으로 떨어지는 폭포와 마주한다. 제2폭포 이름은 ‘절구폭포’다. 표주박 모양을 닮은 듯도 하고, 절구통을 닮은 듯도 하다. 폭포수와 어우러진 단풍에 반한 사람들은 쉬이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다.

갈림길로 돌아와 주탐방로를 따라 200m 오르면 일정의 마지막 코스인 제3폭포를 만난다. 용연폭포라는 이름을 가진 제3폭포는 주왕산 계곡에서 가장 웅장하다. 30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곳에서 발길을 돌려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산길을 맛보고 싶다면 가메봉과 칼등고개를 거쳐 대전사로 가는 길을 택해도 좋다.

그 길은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보통 걸음으로 3시간이 소요된다. 단풍을 감상하며 폭포 앞에서 쉬어간다 해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단풍은 10월 중순부터 물들기 시작해 10월 말 절정을 이룬다. 11월 중순까지 늦은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유명한 주산지는 조선 경종때인 1721년에 만든 농업용 저수지다. 안개 자욱한 새벽이면 물에 잠긴 왕버드나무가 연출하는 몽환적인 풍경을 담기 위해 전국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특히 저수지를 둘러싼 울창한 숲이 화려한 가을빛으로 변하면 셔터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산책로 끝에 있는 수변데크에 서면 주산지 전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저수지에 몸을 담근 늙은 버드나무가 고요한 풍경을 선사한다. 잠시 세상살이 내려놓고 무심한 구름처럼 쉬었다 가기 좋은 곳이다.

아스라한 절벽 위에 자리 잡은 방호정과 99칸의 단아한 멋을 느껴볼 수 있는 송소고택도 청송의 숨겨진 명소다.

트레킹의 환상적인 마무리, 달기약수백숙

주왕산 트레킹을 마친 후 여행의 마무리는 두말이 필요 없는 달기약수백숙이다. 달기약수로 끓여내는 달기약수백숙은 청송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별미다. 달기약수에 엄나무, 황기, 녹두, 대추를 넣고 푹 끓여 내 국물은 진하고 고기는 쫀득하다. 백숙과 닭불고기를 함께 먹는 세트메뉴가 인기다. 마지막에 나오는 녹두죽은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여독은 어느새 사라지고, 건강한 기운이 가득 퍼진다. NPS

여행 정보
  • 주왕산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공원길 169-7 / 054-873-0018 / 주차료 성수기 5천원, 비수기 4천원
  • 주산지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주산지길 163 / 054-873-0014
  • 방호정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방호정로 126-24 / 054-873-0101
  • 송소고택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길 15-2 / 054-874-6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