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WEBZINE 2014.WINTER

사계절 여행기

부안에서 보내온 겨울 낭만 초대장(유은영 여행작가) 어사 박문수가 영조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생거부안’이라 극찬하였던 그곳.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나그네에게도 넉넉한 법이다. 산과 바다가 빚어놓은 풍경은 말할 것도 없고, 풍성한 먹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세월의 품격을 간직한 내소사

부안 여행의 일번지는 내소사다. 백제 무왕 34년 해구선사가 창건한 내소사는 천년의 세월이 아로새겨진 곳이다. 내소사는 들어서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큰 장정도 한 아름에 안을 수 없는 우람한 전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임진왜란으로 삭막해진 내소사를 복구하면서 심은 나무들은 150살이 넘었다. 고개를 치켜들고 꼭대기를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하늘 높이 뻗어있다. 바람이 불면 상큼한 솔향이 코끝에 흩어진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아름다운 숲’과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나무 숲길 끝에 자리 잡은 내소사는 김소월 시인이 내 누이 같다고 한 국화꽃을 닮았다. 새하얀 눈이 덮인 능가산 품에 안겨 있는 절은 언제나 편안하게 나그네를 반긴다. 보물 291호 대웅보전은 천 년의 시간이 쌓여 더욱 빛난다. 점잖은 배흘림기둥 위에 날아오를 듯 살포시 앉은 팔작지붕은 수수하고 우아하다. 나무를 하나하나 깎아 만든 꽃무늬 문살은 대웅보전 최고의 작품이다. 꽃잎이 살아있는 듯 조각을 한 옛 목공의 솜 씨가 볼수록 놀랍다. 꽃잎은 세월의 무게에 제 색깔을 잃은 지 오래지만 지금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듯하다. 빛바랜 단청도 언뜻 보기에는 볼품이 없지만 천년고찰의 기품이 서려 있다.

내소사 최고의 비경은 관음전에 숨어있다. 불이문 앞을 지나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10여 분을 오르면 관음전이다. 능가산 자락에 싸여 다소곳이 앉은 내소사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 폭의 수묵화가 발아래 펼쳐지는 순간, 겹겹이 쌓인 세월의 향기가 솔향기보다 진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봄에는 화려한 벚꽃, 여름에는 시리도록 푸른 전나무숲길, 가을에는 오색단풍, 겨울의 설경 덕에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내소사 전나무숲길, 관음전에서 내려다본 내소사 풍경

걸으며 즐기는 겨울 바다, 변산 마실길

변산 마실길은 ‘마실 다녀온다’는 말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마을에 놀러 나가듯 가볍게 놀며 쉬며 즐기는 길이 바로 마실길이다. 바다와 마을을 자연스레 이어놓은 마실길은 모두 14코스. 그중 해안을 끼고 있는 길은 1코스부터 8코스까지다. 그중 가장 인기 코스는 채석강을 지나는 3코스와 격포항에서 솔섬까지 이어지는 4코스다. 흔히 겨울 바다하면 매서운 겨울바람과 쓸쓸한 해변이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한적한 해안에서 듣는 파도소리와 갈매기가 친구가 되는 겨울 바다의 낭만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마실길에는 정박한 배들이 가득한 항구와 파도 소리를 따라 걷는 소나무숲길 등 다채로운 풍경들이 이어진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채석강이다. 1,000여 편의 시를 남긴 중국 최고의 시인 이태백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러 뛰어들었다가 생을 마감했다는 채석강. 기암절벽이 아름다웠다는 그 강과 닮은 채석강은 변산반도에서 첫손에 꼽히는 풍경이다.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과 편마암위에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이 켜켜이 쌓인 모 습은 신의 조각품이다.

해안으로 이어지는 마실길에서는 어디서나 해가 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지만 특히 솔섬의 낙조는 마실길 최고의 해넘이로 꼽힌다. 4코스의 이름이 해넘이 솔섬길로 붙여진 까닭도 이 때문이다. 전북학생해양수련원 몽돌해변 앞에는 소나무가 자라는 섬 하나가 있다. 망망한 바다에 외로이 떠 있는 작은 섬이 바로 솔섬이다. 이 섬은 해가 지기 시작하면 외롭지 않다. 온 하늘을 뒤덮은 붉은 노을 속에 자리잡은 섬의 그림자를 카메라에 담기 위하여 전국의 사진 작가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몽돌해변에 털썩 주저앉아 낙조를 바라보노라면 삶의 무게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아름다운 노을만이 가득 찬다.

변산 마실길의 겨울바다풍경

즐거운 밥도둑 삼총사

곰소항은 곰소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과 변산반도에서 잡히는 싱싱한 어패류로 만든 곰소젓갈로 유명하다. 곰소쉼터회관은 곰소젓갈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이름난 맛집이다. 9가지 젓갈로 차려지는 젓갈정식은 밥 한 그릇 눈 깜짝할새 사라지게 하는 진정한 밥도둑이다. 순태젓, 오징어젓, 창란젓, 토하젓, 바지락젓, 꼴뚜기젓, 낙지젓 등 취향에 따라 골라먹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뜨거운 돌판에 갑오징어를 매콤하게 구워 먹는 맛집도 있다. 적벽강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은 해변촌 탈아리궁이다. 탱글탱글한 갑오징어를 아삭한 양파김치와 묵은지에 얹어 먹는 맛이 기가 막힌다. 갑오징어구이를 다 먹고 남은 양념에 볶아 먹는 밥도 환상적이다. 직접 빚은 만두로 끓여내는 해물만두도 인기메뉴다.

바지락죽은 부안에서 꼭 먹어봐야 할 별미다. 삼면이 바다인 변산반도에는 갯벌에 바지락이 많이 난다. 바지락은 아미노산과 글리코겐 등이 풍부한 영양식품이다. 변산명인식당은 20년째 바지락죽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집이다. 인삼바지락죽은 신선한 바지락에 인삼과 채소를 넣어맛과 건강을 한꺼번에 잡는다. NPS

신의 놀라운 솜씨 채석강, 변산명인식당의 인삼바지락죽

여행 정보
  • 내소사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 / 063-583-7281 / 관람시간 동절기 08:30~17:30 /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500원 / 주차료 최초 1시간 1500원 이후 10분당 200원.)
  • 변산마실길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새만금홍보관 / 063-580-4382(부안군 환경녹지과) / 주요 코스 1코스 조개미 패총길(5km, 1시간) : 새만금홍보관-합구 곤충체험관-대항리패총-팔걱정-변산해수욕장-송포 포구, 2코스 노루목 상사화길(6km, 1시간 30분) : 송포항-사망마을-상사화군락지-노리목-고사포-성천포구, 3코스 적벽강 노을길(7km, 2시간) : 성천-하섬전망대-반월마을-작은당사구-적벽강-채석강-격포항, 4코스 해넘이 솔섬길(5km, 1시간 30분) : 격포항-봉수대-전라좌수영세트장-궁항-상록해수욕장- 솔섬)
  • 숙박 (변산 격포리에 숙박업소가 몰려있다. 채석강스타힐스(063-581-9911)와 해넘이타운(063-582-7500)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인증한 숙박업소로 보다 깨끗하고 믿음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