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인터뷰

음식은 생명이다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선재 스님>

글 차승진 / 사진 김지원

요즘처럼 활발하게 맛을 말하고 음식에 열광한 때가 또 있었을까. 삼시세끼 어떤 음식을 먹는지가 TV와 SNS를 점령하다시피 한 시대, 선재 스님은 ‘자연 본연의 맛’을 찾을 것을 강조한다. 방송과 책, 강연 등을 통해 우리 사찰음식에 깃든 철학과 우수성을 국내외에 전하고 있는 선재 스님을 만났다.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선재 스님

프랑스, 사찰음식의 깊은 맛에 반하다

지난 10월 28일, 선재 스님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를 찾아 <한국의 사찰음식>이란 주제로 특강을 했다.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사찰음식의 정신과 맛을 알리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특강을 신청한 100여 명의 학생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선재스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한국의 사찰음식에 담긴 정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찰음식은 나와 자연을 둘이 아니라 하나로 보는 생명관을 갖고 있어요. 불교 경전에는 ‘벌이 꽃에서 꿀을 따올 때 꽃을 해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찰음식도 그렇죠. 사찰음식은 고기나 생선, 오신채 등을 지양하지만 유전자 조작 식품 등 자연스럽지 않은 재료 역시 멀리합니다. 강의를 하며 학생들에게 담근 지 1년 된 간장, 5년, 10년 묵은 간장 그리고 20년 묵은 간장까지 맛보게 했어요. 다들 신중하게 발효 간장의 맛을 음미했습니다.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죠.”
사실 프랑스 사람들에게 간장이 익숙한 식재료는 아니다. 그럼에도 간장이 가진 특유의 깊은 맛을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선재 스님은 ‘프랑스는 와인과 치즈가 유명한 나라이기 때문’이라 이야기를 잇는다.
“와인과 치즈 역시 발효와 숙성이 중요하니까요.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이 발효 간장의 깊은 맛을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아요. 각종 식품 첨가 제에 익숙해져 자연 본연의 맛을 잊어버리는 거죠. 사찰음식은 무언가를 더하는 음식이 아니라 덜어내는 음식입니다. 신선한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최소한의 양념만 사용합니다.”
불교에서 양념이란 좋은 약이 되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을 말한다. 좋은 약이 되는 음식을 만드는 데 첨가제가 필요할 리 없다.

몸과 영혼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사찰음식

선재 스님은 강조한다.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란 구체적인 조리법에 앞서 ‘무엇을 위한 요리인가’란 물음을 가져야 한다고. 음식을 먹는 과정은 비단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영혼에도 에너지를 불어 넣는 행위다. 그러니 음식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 졌고, 또 그 재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재배된 건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내 입맛에만 맞다고 좋은 음식이 아닙니다. 정말 좋은 음식은 내 몸에 약이 되는 음식이고, 우리의 영혼에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니까요.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재료, 즉 동식물도 생명임을 기억해야해요. 음식은 생명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요? 농약을 뿌려 재배한 채소를 먹습니다. 동물은 또 어떻게 키우고 있죠? 좁은 우리에 가둬두고 성장촉진제 약을 먹이며 키웁니다. 당연히 그렇게 사는 동물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지요. 과도한 스트레스는 면역력 약화를 부르고, 병을 부릅니다. 그러면 또 다른 약을 투여하겠죠. 그렇게 사육된 동물을 음식으로 섭취했을 때 과연 우리 몸과 마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정육이란 단어는 사실 불교에서 온 말입니다. 깨끗할 정(淨), 고기 육(肉). 깨끗한 고기를 취급한다는 의미죠. 불교에서도 수행 중인 스님이 병이 들었을 때 등 필요할때는 정육을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먹는 고기를 과연 정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선재 스님이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을 열고 사찰음식을 알리는 것은 단순히 사찰음식의 레시피를 공유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찰음식에선 배추 한 포기도 그냥 ‘배추 한 포기’로 보지 않는다. 그 배추가 자라기 위해선 땅의 흙이 필요하고, 햇빛과 바람, 물이 필요하며, 농부의 정성 어린 손길이 닿아야 하다. 한 포기의 배추에 담긴 자연을 알아보고 감사히 여기는 게 바로 사찰음식이다. 선재 스님은 이러한 사찰음식에 담긴 가르침과 의미를 전하고 싶다. 우리의 몸은 생명이요, 식재료도 생명이기 때문이다.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 선재 스님

정말 좋은 음식은 내 몸에 약이 되는 음식이고, 우리의 영혼에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니까요.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재료, 즉 동식물도 생명임을 기억해야해요. 음식은 생명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입맛이 바뀐다

사찰음식은 자극적이지 않다.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고 당연히 식품첨가제도 넣지 않는다.
“사찰음식의 맛은 무(無)입니다. ‘맛없는 맛’이죠.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가장 맑고 깨끗한 맛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음식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 입맛도 바뀔 수 있어요. 좋은 땅에서 나온 식재료를 조미료나 식품첨가제 없이 먹으면 처음엔 낯설 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돼요.”
물론 입맛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선재 스님은 어린 시절에 생명과 음식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선재 스님이 사찰음식에 기초한 어린이 식습관 개선용 교육뮤지컬 ‘그거 알아요? 음식은 생명!’을 진행하는 이유다.
선재 스님에겐 꿈이 있다. 언젠가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꿈이다. 정직하게 농사를 짓고, 정성스럽게 장을 담그는 학교. 자연의 소중함과 생명의 귀중함을 배우는 학교. 또 건강한 사찰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에 따뜻한 에너지를 채우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풀도 낫으로 베면 풀독이 없지만, 기계로 베면 풀독이 오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별 거 아니라 생각하는 작은 풀 한포기도 자신을 귀하게 다루는 것에 대해 안다는 것이죠. 사찰음식엔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어요. 언젠가 그런 마음을 함께 배우고 나누는 학교를 세우고 싶습니다.”
한 그릇의 음식엔 자연과 생명이 담겨져 있다는 선재 스님. 아무리 바쁘더라도 음식을 먹지 않으면 인간은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우리가 선재 스님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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