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도 없던 오랜 옛날 뱃사람들은 달과 별에 의지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한 장의 지도를 펴 놓고 미지의 대륙을 찾아 혹은 보물을 찾아 떠났을 겁니다.
과학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새로운 나침반을 선물했습니다. 인공위성을 이용해 위치를 확인하는 GPS 시스템입니다.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란 미 국방부가 1978년부터 우주공간에 구축해 온 위성항법시스템입니다.
지상 2만km 상공에 떠 있는 위성들은 24시간 우주공간을 선회하면서 지구상의 모든 GPS 단말기에 좌표 값을 송신하고 있습니다.
GPS는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자동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 장치는 길 안내는 물론이고 위험 구간이나 지름길을 찾아 주죠. 비행기나 선박의 안전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차선과 신호등을 만들어 주는 것도 GPS 기술입니다.
GPS는 말 그대로 21세기의 별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GPS가 교통이나 통신, 군사적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건 아닙니다. GPS를 이용한 보물찾기 놀이도 가능합니다. 그것도 전 지구적인 규모로 말이죠.
실제로 한 미국인이 GPS를 활용한 보물찾기 놀이를 만들었습니다. 지오캐싱(Geocaching)이라는 놀이인데요. 지오캐싱은 지구를 뜻하는 지오(geo)와 은닉물을 의미하는 캐시(cache)의 합성어입니다.
지난 2000년 5월이었습니다. 미 클린턴 행정부가 군사적 용도로 개발한 GPS 시스템의 사용을 민간에 개방했습니다. 당시 컴퓨터 컨설턴트인 데이브 얼머(Dave Ulmer)는 GPS의 기술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아 보기 위해 친구들과 직접 시험을 해보기로 합니다.
한 명이 숲속 어딘가에 물통을 숨겨 놓은 뒤 그 좌표를 나머지 친구들에게 알려 주는 거죠. 그럼 나머지 사람들이 GPS 기기를 들고 좌표를 따라 물통을 찾아 나서고, 물통을 발견한 친구는 그 증거로 물통을 가져오고 대신 자신만의 보물을 하나 놓고 오는거죠. 그럼 또 그 다음 사람이 가서 그 보물을 꺼내고 다시 자기 물건을 놓고 옵니다. 이게 바로 지오캐싱, 글로벌 보물찾기 놀이의 시작입니다.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입소문, 웹소문으로 퍼져 나가던 지오캐싱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0년 10월 뉴욕타임스에 기사가 나오면서부터입니다. CNN 역시 그해 12월에 새로운 형태의 취미활동이라며 지오캐싱을 소개했고요.
2009년 현재 지오캐싱은 전 지구적으로 얼마나 퍼져있을까요.
지오캐싱 홈페이지(www.geocaching.com)에 따르면, 2009년 8월 현재 지구촌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은닉물(캐시)은 총 87만 8204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전 세계 100여개 국에 숨겨져 있고 심지어 남극 대륙에도 보물이 감춰져 있다고 하네요.
그럼 은닉물로 적당한 물건은 어떤 걸까요. 숨기는 사람의 자유지만, 음식물이나 살아있는 생물은 피해야 합니다. 주로 인형이나 장난감, 그리고 자기나라에서 가져온 기념품들이 주로 보물 상자에 담기는 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회용 카메라를 넣어 놓기도 합니다. 그 보물을 찾은 사람은 카메라로 셀카를 찍고 다시 보물 상자에 넣어 두는 거죠. 어떤 사람은 자기 집 마당에 보물을 숨겨놓고 찾아오는 이를 반갑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유럽 지역에서는 지오캐셔들끼리 팀을 나눠 정해진 시간동안 누가 더 많은 캐시를 찾는지 대회를 열기도 합니다.
참, 트래블 버그(travel bug)라는 보물도 있어요. 이 녀석은 은닉처에서 은닉처를 옮겨 다니면서 세계여행을 하는 보물입니다. 트래블 버그는 저마다 일련번호를 부여받는데 지오캐싱 홈페이지엔 지금까지 트래블 버그가 여행한 곳의 항해일지가 기록됩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아직 미국이나 유럽만큼 활성화됐다고 말할 수 없지만, 꾸준히 그 회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오캐싱코리아(www.geocaching.co.kr)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회원 가입수가 1824명에 이르더군요.
지오캐싱 얘기를 하다 보니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서 엄마 손을 잡고 보물찾기 놀이를 하던 기억이 되살아나네요. 혹 GPS 기기가 있다면 집 근처에 나만의 보물을 하나씩 숨겨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