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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장려상)국민연금, 그 고마운 이름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2

조회수

2168

내용

제3회 장려상
국민연금, 그 고마운 이름

김영우 / 서울 동작구 사당4동 ( 특례노령연금 수급자의 처 )

그이가 퇴직한 것은 93년 10월이었다.
세월이 유수라더니 어느덧 그의 나이 59세. 참으로 허망했다. 아직 충분히 일할 나이긴 하지만 정년퇴직자란 딱지를 붙인 터에 다시 어디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퇴직일자가 임박한 어느 날, 그이가 나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이제 나의 월급생활은 끝났오. 퇴직금 타서 넘겨줄 테니 다음달부터 가정경제는 당신이 책임지고 처리하시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떨렸다. 매달 통장에 입금되는 그이의 월급을 쪼개서 생활비와 교육비를 충당하고 또 무리를 해서라도 멀마간의 저축을 해온 터인데 지금 월급이 송두리째 끊긴 마당에 무슨 수로 가계를 꾸려 갈까 막연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엄연한 것, 달리 회피할 길은 없었다.
그이가 퇴직금을 타 왔다. 1억이 넘었다. 거금이라면 거금이긴 하지만 그돈의 이자수입이 어찌 월급에 버금갈 수 있을 것인가 .
그러나 머리를 잘 굴리면 활로가 없지는 않을 것도 같았다.

그날부터 은행, 새마을 금고, 투신회사, 신용금고, 농협 등 금융기관 점포들을 찾아다녔다. 되도록 높은 금리와 안정성을 탐색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생활비 조달작전은 그런대로 성공리에 마무리될 수 있었다.
농협 정기예탁금에 4천만원, 은행 세금우대 노후연금신탁에 4천만원, 그리고 나머지 돈은 그동안의 저축을 보태서 상호신용금고 에 5천4백만원을 불입했다. 모두 매달 이자를 수령할 수 있어 한달에 1백 20여만원의 고정수입이 확보된 것이다. 그이가 재직 할 때의 월급액수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지만 일단 기본적 생활비는 걱정없이 마련된 셈이었다.
모처럼 안도의 긴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걱정거리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이는 아침마다 늦잠에 빠졌다. 하긴 통틀어 34년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한 터이니 일 시에 긴장을 푼탓에 그럴만도 할 것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느즈막히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바쁜 일이나 있는 사람처럼 서둘어 집을 나섰다.

처음엔 아마 일거리를 알아보려는 것인가보다 라고 가볍게 넘겼지만 번번이 그의 외출은 늦은 만취귀가로 낙착되었다.
취중에 진정이 드러난다더니 그는 전에 없던 푸념까지 늘어놓기 일쑤였다. 걸핏하면 초점없는 삿대질을 해대기도 했다.
나는 아직 안죽었어! 이 X자식들..
세상인심이야 본래 그런 것 아닌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심.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는 것이 어디 이제 오늘의 일이든가.
소득이 늘면서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인간관계마저 각박함이 더해 가는 세태, 한탄한다고 쉽게 풀릴 일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틈틈이 글을 썼다. 그가 시인이라고 해서 시작으로 수입을 올리긴 어려웠다. 잘 실어도 1년에 고작 2-3 편, 한편 원고료라야 7-10만원에 불과한 실정인 것이다.

그는 나에게 큰소리를 쳤다.
내 잡비는 내가 조달할 테니 염려 놓아요
그는 잡문을 써서 신문사로 동분서주했다. 대로는 짭잘한 수입도 올리는 것 같았다.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리고 그가 말했다.
내년에 국민연금에서 몇백만원 나오니 우리 해외여행이라도 합시다.
나는 깜짝 놀랐다.
국민연금이라니, 참 그것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연금으로 받아야지 왜 일시금으로 받아야 하는가?
그이가 국민연금에 가입한 것은 연금제도가 시작된 88년초였다. 퇴직이 93년 10월이니 그이는 5년 10개월간의 기간을 채운 것 이다.
이튿날 국민연금 출장소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는 여직원의 목소리는 상냥했다. 그리고 그녀의 안내는 친절하고도 소상했다.

퇴직한 경우에 퇴직일자로부터 1년후 일시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최초 가입자인 그이는 이미 60개월 이상을 불입했기 때문에 만 60세가 될 때 특례노령연금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 연금액을 늘리기 위해선 계속 연금을 불입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 등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넌지시 그이에게 의논했다.
국민연금은 계속 불입해야겠어요. 목돈 찾아 여행하기 보다 당신이 만 60세가 될 때부터 매달 연금을 받으면 얼마나 보람 있겠 어요?
그는 시큰둥했다. 한달에 몇만원씩 몇 년을 더 넣는다 해서 무슨 큰 돈을 타겠느냐는 것이다. 번거롭고 부담스러운 일을 자초 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몇백만원을 일시금으로 찾고 만다면 그이가 재직시 불입한 금액의 다과 보다 5년 10개월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무위로 돌아간다 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나는 이웃에 연금타는 이들을 보아 왔다.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은 해마다 큰폭으로 올라간다. 10여년전 30만원을 받던 이 가 지금은 백만원을 받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은 공무원의 봉급인상률에 비례해 오른다는 것이다. 해마다 불어나고 세금 한푼 떼지 않으니 그야말로 황금알처럼 알찬 것이 연금이라 부럽기까지 했던 것이다.
국민연금 출장소에 또 전화를 넣었다. 국민연금 수급권자의 연금액수는 불변인지 또는 어떤 기준에 의해 조정되는지 물어 보았 다.
여직원이 친절하게 알려줬다.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에 따라 조정된다는 것, 소비자 물가 10%가 오르면 연금액도 그에 비례해서 올라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와서 그이의 등을 밀고 국민연금출장소를 갔다. 신청서를 적어 날인한 뒤 담당직원에서 제출했다. 무슨 복잡한 수속이 기다릴까 걱정스러웠는데 전혀 기우였다. 사무실 분위기부터 일반 관공서와는 달랐다. 유난히 여직원이 많 아서 그런지 편안함과 부드러움이 감돌았다. 서류를 받아 본 직원은 되었으니 돌아가 기다리면 통지서가 갈것이라 했다.
얼마 후 어김없이 지역가입을 허락한다는 통지서가 왔다. 그이의 국민연금은 계속 기간의 부피를 더해갈 수 있었다.

참으로 세월의 흐름은 빨랐다. 옛노인들이 지난 날을 돌아보면 마치 하루아침 같다더니 그 말이 이제야 실감으로 다가오는 것 이다.
어언 그이의 나이가 환갑을 맞았다. 야심 많던 젊은 날의 모습, 33년전의 미청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속에 잔잔한 파도가 인다.
그이의 국민연금 가입월 수가 94개월에 이르른 것이다.
또 국민연금 출장소에 전화문의를 했다.
내달중에 연금지급신청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전화를 받은 여직원이 대답했다.
가입자의 연령이 만 60세에 도달했으니 연금 지급신청은 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지금 불입기간이 94개월이니 두달만 더 불입하면 96개월이 되어 지급액이 훨씬 유리해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94개월은 7년 10개월이기에 7년에 해당되지만 96개월은 8년에 해당됨으로써 지급액수가 5%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의 기계적 답변에 길들여져 있던 터라 도리어 생경감마저 느끼게 했다.
진실로 가입자의 이익을 극대화 시켜주기 위한 따뜻한 배려였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연금의 참 뜻을 살리는 봉사정신의 말로인 것이다.
그래서 다시 두달을 불입했다. 마침내 96개월. 올 1월 지급신청을 했다. 호적등본을 떼어와야 하는 수고쯤이야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고백해서 다소 떨리는 마음이었다.

한달 국민연금 수령액이 21만여원, 큰돈은 아니지만 우리네 서민층 주부에겐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콩나물 한 봉지 사는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살림 아닌가.
생활물가는 나날이 치솟고 은행 금리는 떨어지는 터에 한달 21만원은 가히 가뭄에 단비와 같은 것이리라. 올 3월에 첫 연금을 탔다. 2월부터 지급개시가 된 탓에 2개월분 42만원이었다.
6월에 두번째 연금이 통장에 입금되었다. 이번엔 3개월 63만여원이었다.
또 그 동안 연금액 조정이 있었다.
액수는 겨우 몇백원에 지나지 않았다. 출장소에 알아보니 내년 이후 조정 때는 10% 인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물가가 올라야 오르는 것이라면 굳이 신경을 곤두세워 기다릴 까닭이 없었다.
지금의 액수에 만족할 뿐이다.
그이도 대만족이다. 비록 생활비 전액을 충당하기에는 부족한 액수이나 서민가계에는 큰 도움이 되니, 일시금으로 찾아 소비하 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고 말한다.
앞에서 솔직하게 우리의 형편을 이야기 했지만, 아직은 다소간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분기마다 예금 통장으로 입금되는 연금은 차곡차곡 쌓아갈 생각이다.
가장 보람있는 돈은 가장 보람있게 써야 그 가치가 살아나는 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돈이 상당한 부피를 쌓으면 정말로 귀중한 곳에 빛이 되는 쓰임새를 찾을 것이다.

물론 아름답고 행복한 노후를 장식하는 힘은 돈에서만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제력이 없이 이룰 수 있는 안정은 없다는 사 실 또한 확실하다.
안정된 노후, 형편이 허락한다면 그이의 손을 잡고 꿈과 낭만을 되살리는 여행길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건강한 노후를 설계하는데 하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국민연금, 부분적이나마 이 제도의 혜택을 입는 우리의 행운아임에 다 름 아니다.
국민연금, 그 고마운 이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