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WEBZINE 2014.WINTER

화제의 인물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나눔이지요-‘너와 내가 함께 나눌 수 있어 좋다’라고 이야기하는 박경림을 만났습니다-(글 : 배나영 작가 사진 : 이현정 / 국민연금공단 홍보실) 아무리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지만 박경림, 그녀는 조용하게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에 재능기부를 약속하고 각종 행사의 진행을 도와주는 일에 서부터 앨범 수익금 전액인 1억 7천만원을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부한 일,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홍보대사로서 8년째 아이들 돕고, 결혼식을 올리면서 화환 대신 쌀을 받아 기부하고, 루게릭 병을 앓는 박승일 선수를 만난 후 매월 루게릭 환자를 돕고 있습니다. 아이를 유산한 후 같은 아픔을 겪는 엄마들이 없도록 조산아와 미숙아를 위해 1억을 기부하고, 네팔의 학생들에게 생필품과 학용품을 지원하고 돌아와서는 계속 눈에 밟히는 아이들을 다시 찾아가 도서관을 지어준 일, 매년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고, 개인경매 행사를 해서 또 기부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모든 나눔 행사에 앞장서고... 그녀가 늘 반짝이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우리 어릴 때는 연말이 되면 라면 봉지에 쌀 담아오라고 했잖아요. 우리 반 아이들이 쌀을 모아오면 선생님이 저한테 전달을 해줬어요.(웃음)”

‘사람 좋다’, ‘인맥이 넓다’는 말이 항상 따라붙는 씩씩하고 밝은 그녀의 모습을 보면 고생은 전혀 모르고 행복하게만 자랐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 그녀는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어렵게 자랐다고 합니다. 박경림은 그 시절을 즐겁게 회상합니다.

“선생님이 저에게 쌀을 주시면 ‘쟤네 집이 어렵구나.’ 수근 대는 분위기가 아니라 ‘이야~ 좋겠다!’면서 친구들이 막 박수쳐주고 그랬어요.”

어려운 시절, 서로 나누는 일은 전혀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 땐 다 고만고만하게 살았잖아요. 창피하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우리 가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부모님도 좋아하시니까 참 좋다. 나도 잘 되면 누군가와 나눠야지, 누군가를 기쁘게 해줘야지.’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던 것 같아요.”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받은 것이 많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박경림은 일찍부터 나눔을 시작합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이미 스타급 연예인이었던 박경림은 1999년부터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재능 기부를 시작합니다.

“제가 다녔던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에서 저를 주축으로 연예인들이 모여 ‘끼 기부’를 했어요. 그게 시작이 되었죠. 행사가 있으면 진행도 하고, 노래 잘하는 친구들은 가서 노래도 하고요.”

이듬해에는 ‘박고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박수홍과 함께 앨범을 발표했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앨범을 기획할 때부터 수익금 전체를 기부하기로 마음먹고 만들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앨범을 낼 이유가 없었죠. 주위에서는 앨범이 잘 팔리니까 행사해서 돈을 벌면 수익금보다 더 많이벌 수 있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앨범을 사주시는 분들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사주셨을 테니까요.”

앨범 수익금 1억 7천만원은 고스란히 세브란스병원의 소아암 환자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박경림은 그 아이들과 부모님을 만나면서 그들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돕는 일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알게 된 박경림은 그 후로도 아이들을 돕는 일을 계속합니다.

한창 인기가 많을 때 박경림은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006년부터 세이브더칠드런의 홍보대사로 활동했습니다.

“저한테 너무나 좋은 기회를 주신 거죠. 어린이들을 ‘세이브’ 할 수 있는 기회잖아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어요. 이듬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홍보대사를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쁜 와중에도 신생아를 살리기 위한 모자를 일년에 두 개 이상 뜨고 있다는 박경림입니다.

“코만 넣어주면 그 다음은 잘 해요. 7년째 뜨고 있으니 뜨개질을 못하면 안되죠.(웃음) 제가 많이 뜨지는 못해도 주위 사람들을 많이 뜨게 해요. 저희 어머님이 열 개씩 떠요.”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를 위한 모자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더욱 뜨겁게 느꼈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고 임신했을 때 모자를 뜨는 느낌과 아이를 낳고 나서 모자를 뜨는 느낌, 아이를 유산하고 나서 모자를 뜨는 느낌이 다 달라요. 특히 아이를 잃고 모자를 뜰 때는, 저는 아이를 잃었지만 이 모자를 쓸 아이는 꼭 살아주기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뜨게 되더라고요.”

나눔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 돌아옵니다. 도움을 주고, 감동을 돌려받지요. 박경림은 소아암에 걸린 아이가 그림책을 만들어 준 일, 편지를 써준일, 루게릭 병에 걸려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었던 박승일 선수가 문자를 보내온 일을 떠올리며 행복해했습니다. 마음이 여린 그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눈물이 나서 무턱대고 흘릴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좀 강해졌죠. 지금은 눈물을 많이 참는 편이에요. 내가 울면 누군가가 따라 울지도 모르잖아요.”

누군가가 눈물을 흘릴까봐 자신의 눈물을 참는 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더욱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집니다.

“주는 것과 나누는 것은 많이 달라요. 나눔은 ‘내가 너보다 더 많이 가졌으니까 주는 것’이 아니라, ‘너와 함께해서 좋은 것’이죠. 도움을 받는 사람도 얼마든지 나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이번에는 나눠받지만, 다음에는 나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박경림은 나눔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매달 조금씩 어려운 아이들과 결연하는 일도, 일 년에 한 번 구세군 냄비에 얼마를 보태는 일도, 안 입는 옷을 모아 아름다운 가게에 보내는 일도 나눔이니까요. 시간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내가 나눌 수 있는 걸 나누면 좋겠어요. 거창하게 어느 단체나 재단을 통하지 않더라도 일단 지금, 내 옆의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잘 챙기는 것도 나눔이지요. 나눈다는 건 꼭 물질만 나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질만을 나눈다면 부자들은 다 행복해야 할 거에요. 관심이 필요한 아이에게는 관심을 주고, 누군가에게 문자라도 한 통 넣어주는 일도 아름다운 기부가될 수 있지 않겠어요?”

박경림은 연말이라 더욱 바쁘다면서도 남은 한 해를 조금 더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이번 12월 12일(금)에 시간되시면 오세요. 강남역의 「알베르」라는 카페 지하에서 박경림 바자회를 열거든요. 수익금은 전부 세이브더칠드런에 기부할 예정이에요.”

어쩌면 발 딛을 틈이 없어서 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런 초대라면 거절할 수 없겠죠.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아는 그녀와 함께라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