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인터뷰 ::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 고도원 :: 잠시 멈출 줄 아는 사람만이 꿈을 가질 수 있다

매일 아침 300만 명의 가슴을 깨우는 고도원. 2001년 ‘희망이란’이라는 첫 글로 시작된 그의 아침편지는 고된 일상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으려노력는 이들에게 길동무가 돼 주었다.
그는 실로 다채로운 이력을 지녔다. 한국 현대사에 학생 운동으로 이름을 올렸다. 5년 간 웨딩드레스 사업을 하기도 했다. <중앙일보>와 <뿌리 깊은 나무>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청와대에서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지금은 매일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보내며 여러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다. 충주의 아침편지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을 운영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보는 치유의 시간을 제공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진 ‘고도원의 아침편지’도 한때는 작은 씨앗에 불과했다. 2001년 처음으로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시작할 때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청와대 생활까지 했던 사람이 재능을 쓸데없는 데 낭비한다는 것이었다.
“격려를 받을 때보다 의심을 받을 때 사람은 단단해져요. 네가 정말 원하는 일이니, 후회하지 않겠니, 라고 스스로 자문자답하며 의지를 다지고 계획을 세우게 되지요.” 그가 새로운 꿈을 위해 결단을 내리는 순간마다 고 한창기 선생 (뿌리 깊은 나무 발행인)의 “꿈을 위해서는 돈을 낙엽처럼 태울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회고한다.

매일의 준비, 좋은 기회를 알아채는 감각

대중에게 사랑받는 글쟁이로서의 시작은 거창하지는 않았다. 그는 일평생 책에 파묻혀 지낸 목사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여러 분야의 책에 줄을 그어가며 읽으며 자라났다. 기자가 되고 나서도 독서카드를 만들며 책읽기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이숙영의 파워FM>이라는 라디오 프로에 나가게 됐다. 신문기사를 10분 동안 요약해 전달하는 코너였고 당시에는 꽤나 신선한 기획이었다. 뉴스를 한 줄로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책의 내용을 독서카드로 만들곤 했던 그에게는 익숙했다. 브리핑을 마치며 ‘고도원의 한마디’를 붙였다. 코너의 인기가 점점 높아졌다. 그 내용을 모아 단행본 <못생긴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를 집필했다.

모든 사람들이 저를 좋은 이야기 전해주는 편한 아저씨, 할아버지로 느끼면 좋겠어요.

글은 읽히고 말은 들려야 한다는 신조

그는 기자와 작가, 강연자로서 말과 글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이다.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 물었다. “빛나는 아이디어도 잊힌다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좋은 표현, 좋은 발상이 떠오르면 무조건 기록하세요. 늘 수첩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좋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쓸 때는 영감을 자극할 수 있는 책을 여러 권 뒤적이며 참고를 합니다. 평소의 메모와 책에서 참고한 내용을 모아 키워드를 작성하면, 그 과정에서 문장들이 피어납니다.” 그는 쉽고 잘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다. 한번 펼치면 결코 놓을 수 없는 글을 쓰기 위해 글의 기승전결을 점검하고 또 하기로 유명하다.
“한번은 ‘밑바닥에서 우뚝 서기’라는 짧은 아침편지 글을 읽고 다시 살아볼 결심을 했다는 한 여성분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죽기로 결심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옷장과 통장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메일함을 열었는데 우연히 아침편지를 읽었다는 내용이었어요. 정말 감동했고 감사했어요. 제가 읽고 좋아서 기록해 둔 문장이 누군가에게 삶을 선택하게 한 문장이 된 것이니까요. 작은 글귀가 지닌 놀라운 힘을 저는 ‘행복 바이러스’라고 부릅니다.”
그는 희망에 관한 명강연으로 유명하다. 솔직하게 자신의 삶과 인생철학을 이야기하는 그의 강연은 청중을 들었다 놨다 한다. “내 별명은 ‘못생긴 남자’입니다. 이주일과 조영남 씨 사이의 외모라고 해서 ‘이조사’라고도 하죠.”라는 소탈한 유머에 웃지 않을 수가 있을까. 진솔한 자기고백으로 시작해 청중의 마음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이야기에 남녀노소 감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글은 읽히고 말은 들려야 한다”는 그의 신조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큰 힘 중 하나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진리

49세에 명상을 처음 만났고 늘 “좀 더 일찍부터 명상을 할 것을” 하고 아쉬워한다는 그. 많은 사람이 명상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 공기 좋고 물 맑은 충주에 명상센터를 열게 됐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업무와 인간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러면 분노와 우울, 절망감 등이 쌓여가지요. 불면증이나 위염 등도 마음에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분들이 이곳에 와서 좋은 풍경 보고 좋은 공기 마시며 조용히 자신을 돌아봅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나서 표정부터 달라지는 사람이 많다. 나를 둘러싼 환경은 바뀌지 않지만,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 도시로 돌아가는 것이다. “명상을 통해 놀라운 순간을 경험하고 나면, 같은 조건도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돼요. 그 순간 모든 게 변화합니다. 쉼표 없는 악보로 끝까지 노래 할 수 있을까요? 삶도 그래요. 잠시 길을 멈춰 ‘나’를 돌아보는 ‘명상’은 삶을 건강하게, 그리고 보람차게 완주할 수 있도록 돕는 ‘쉼표’지요.”

우리 모두가 꿈 너머의 꿈을 꾸기를

우리 모두가 꿈 너머의 꿈을 꾸기를

그는 ‘꿈 너머 꿈’을 강조한다. 이는 흔히 의사, 기자, 박사 등의 ‘꿈’과는 거리가 멀다. “의대를 목표로 노력하다가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고 쳐요. 그가 만약 의대가 아니라, ‘타인을 고쳐주기’를 꿈으로 가졌다면 어떨까요? 의사가 못 되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어려운 이들을 고쳐주는 일을 할 수 있잖아요. 꿈 너머의 꿈을 지니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꿈은 인생의 방향에 관한 문제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지 않은 채, 꿈이 아닌 ‘징검다리’를 꿈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가 말하는 징검다리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거나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등의 목표다. 인생이 잘못된 것 같을 때, 뭔가 답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는 인생의 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작가, 방송인, 언론인, 명강사, 이사장. 그를 부르는 수많은 호칭 중 그는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길까. “단지 책을 쓴다는 의미의 ‘작가’를 넘어 사람들에게 꿈을 전한다는 의미의 ‘꿈쟁이’라고 불릴 때 기뻐요. 저는 ‘꿈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도 즐거워요. 환갑이 넘었으니 이제는 ‘고도원 할아버지’라고 불리고 싶어요. 모든 사람들이 저를 좋은 이야기 전해주는 편한 아저씨, 할아버지로 느끼면 좋겠어요.”

취재·글 _ 김은성   사진 _ 황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