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말한다

통장 4개와 어떤 고지서

제11회 국민연금 수급자 생활수기 공모전 - 우수상 최난희

“덧없는 세월이 총총 걸음으로 달아나니 두려워라! 이내 목숨 오래 살지 못할 터인데, 늙은 노모와 동서남북도 모르는 장애아들을 두고 가려니, 달빛 아래 기대선 내 처지가 몹시도 서럽구나!”

국민연금을 말한다

유품 중에 시아버님의 일기장인 듯한 누런 노트 한권을 펼쳐든 채 조용히 읽어 내려가던 남편의 어깨가 소슬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가지마냥 떨리는걸보고 나는 살며시 문을 닫고 대청마루로 나와 앉았다.
나의 시댁은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라북도 순창. 직장 때문에 광주로 분가해 살고 있는 큰 아들인 우리 집으로 어느 날, 시아버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화가 걸려왔다. “내가 소화가 안 되고 배가 아파서 병원을 갔더니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고 하는데 아범은 직장엘 가야 하니까 네가 좀 시간 내서 잠깐 병원으로와 줄 수 있겠니?” 정신지체장애 2급인 아들과 늙으신 노모를 모시고 얼마안 되는 땅을 일구시며 살고 계신 시부모님. 밤새 불길한 예감에 뜬눈으로 맞이한 아침은 다가올 앞날을 예고하듯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위암입니다. 이 정도면 제가 봤을 땐 남아 있는 시간은 6개월 남짓 예상할 수 있어요.” 의사 선생님은 입고 있는 흰 가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차갑게 말했다.
“아야! 저, 머시냐? 나는 긍께 내 병을 받아 들일란다. 목숨을 주신 것도 하늘이요, 거둬 가실 이도 하늘이니 그저 이 모든 것을 내 운명으로 알고 탄식하지 않을런다."

2남 3녀의 자식들은 회갑을 목전에 둔 시아버님의 안타까운 위암 발병 소식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수술을 거부하시는 시아버님의 뜻을 존중하기로 하였다. 6개월이란 시간은 한사람의 인생을 마무리 짓는 데 길다면 길 수도 어찌 보면 매우 짧은 시간이랄 수도 있다. 되돌아보면 후회와 회한으로만 남는 세월, 시들어 가는 자신을 보며 이룬 것 하나 없음에 서글퍼지는 수많은 밤에, 남 몰래 베갯잇을 적시는 그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하루가 다르게 목숨을 조여 오는 극심한 통증에 극구 병원도 마다시던 시아버님은 얼마나 참기가 힘이 들었는지 마지막엔 며느리인 나의 손에 통장 4개와 도장, 그리고 국민연금 납입고지서를 주시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미안하다. 너희들한테 많은 짐을 지워 주게 되어서 너무너무 미안하다. 내 오늘 이 문을 나서면 다시는 이곳에 못 오겠지” 마지막을 예감하신 듯 더 많은 것을 눈에 담아 두려는지 천천히 집을 한 바퀴 돌아보셨다. 월남전 참전용사이신 시아버님은 보훈병원에 입원하여서도 끝까지 영양제 맞는 걸 거부하시며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워하시다가 눈보라 치던 그 겨울 하느님의 따스한 손을 잡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가셨다. 만 60세. 진단 받은 지 4개월. 더구나 우연하게도 며느리인 내 생일에 돌아가셨다.

이제는 자식들에게 노후를 맡기는 시대는 지났다.
소득이 있을 때 나중의 불확실한 시기를 대비하여, 국가가 보장하여 더욱 믿을 수 있는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것은 안정된 나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통장으로 매달 25일이면 어김없이 들어오는 국민연금은 꼭 필요하다.


나는 시아버님이 왜 생전에 그렇게도 병원 가서 수술 받자는 자식들의 말에 반대를 하셨는지를 나한테 주신 은행 통장 4개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보기 전까지는 그래도 다만 얼마라도 돈이 있으니 병원비나 아님 장례비라도 보태라고 돈이 들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통장들은 마이너스 통장들로 농협에 있는 빚까지 합하니 거의 1억이었다. 남편과 나는 믿을 수가 없었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도 없었다. 겨우 논농사 몇 마지기가 전부인 마당에 늙은 어미 두고 먼저 갔다고 시할머니는 매일 우시지, 장애아들과 어찌 살라고 먼저 가느냐고 또 땅을 치시는 시어머님, 거기다가 빚까지. 이 상황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3명의 시누들도 있었지만 다들 자기 살기 바빠서 오로지 남편 밖에 할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논 10마지기를 팔고 경운기 등 농기계를 처분하여 7천만 원 정도의 빚을 갚고 나머지 3천만 원 정도는 큰아들인 우리가 매달 받는 급여에서 조금씩 갚아나갔다. 아들과 남편을 잃은 슬픔이 조금씩 옅어질 무렵, 빚 갚느라다 팔아버린 논이라서 이제는 쌀도 안 나오니 어떻게든 촌에서는 손 벌리지 않겠다 하시며 두 분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도라지 껍질 까는 걸 하셨다. 두분이서 4시간 걸려 20kg 한 자루를 까서 손에 쥐는 돈은 5천 원에 불과했지만, 손자와 며느리에게 손 안 벌리고 시골 살림을 해 주셔서 그즈음 3명의 내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내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시아버님이 통장과 함께 내 손에 쥐어 주시던 납입고지서, 바로 그 국민연금이었다. 지금도 그때가 생각난다. 남원에 있는 지사에가서 신청을 한 후, “어머님이 연금 수급권자가 되셔서 매달 우체국 통장으로 연금이 지급됩니다”라고 말하시던 친절한 공단 직원의 말. 시아버님은 국민연금이 시작된 초창기 때 가입을 하셨는데, 가입기간 66개월에 총 납입금이 756,600원이었다. 2002년도에 작고하셨으니 지금까지 어머님 앞으로 나온금액만 하더라도 3천만 원 가까이 된다.
내일 일을 알 수 없기에 그래도 어려운 시골 살림 속에서도 들어 두었던 국민연금, 시아버님 같은 경우 적게 내고 결과적으로 많이 받게 된 사례일 것이다. 왜냐하면 유족연금에다가 장애아들이 있어서 그 부분까지 합산이 되어 나오고, 매년 물가가 오른 만큼 연금이 인상되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시골에서는 적잖게 유용한 금액이다.
이제는 자식들에게 노후를 맡기는 시대는 지났다. 소득이 있을 때 나중의 불확실한 시기를 대비하여, 국가가 보장하여 더욱 믿을 수 있는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것은 안정된 나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누구나 병들고 늙는다. 그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이름이 적힌 통장으로 매달 25일이면 어김없이 들어오는 국민연금은 꼭 필요하다. 국민연금, 어쩌면 자식보다도 효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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