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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말하다

서른. 설익지도 무르익지도 않아 더 좋은, 그래서 가장 빛나는 때가 왔다.

write 최다솜(자유기고가)


30에 대하여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30’도 그렇다.

스물아홉 살 청년에게는 한없이 무거운 그 숫자가, 데뷔 삼십 년 차 연주자에게는 연민이자 감격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또 누구에게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청춘으로, 누구에게는 ‘끝나버린 잔치’로, 다른 누구에게는 ‘알 수 없는 미래’로 다가온다. 그래도 다행인 건 누구에게나 ‘서른’은 온다는 것이다. 그게 나이든 햇수든, 모든 이들의 생애주기에 한 번은 서른이 묻어있다. 그리고 대개는 서른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는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기도 하고, 뭔가를 결정하기도 하고, 때론 뭔가를 포기하거나 더 힘껏 매달리며 저마다의 사명을 다짐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른이 되던 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또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서른에 처음으로 숍을 열고 시대를 앞서가는 디자이너로 인정받았다. 공자도《 논어》에서 서른을 ‘이립’(而立)이라 표현하며 의미를 뒀다.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뜻을 세우고 인생의 기반을 닦는다는 말이다. 즉 서른을 삶의 튼실한 궤적을 그리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로 내다봤다.


반면 이 시대, 이 땅의 삼십 대들은 이와는 조금 다른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들은 이립은커녕 스스로를 난립(難立)이라고 자조하며 서른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를 반영하듯 서점의 책 절반은 삼십을 아슬아슬한 나이로 규정한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무엇인가 불안정’하고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한’ 나이로 표현했고, 시인 최승자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이 역시 서른은 인상적인 나이임을 방증한다.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알아가고, 내면이 한 뼘 더 깊어지고, 한 발짝 어른에 가까워지는 때가 왔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훗날이 달라질 수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한다. 이를테면 자동차가 마주 오는 공기를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성능과 연비가 결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2017년, 국민연금공단에도 가장 빛나는 때가 왔다. 설익지도 무르익지도 않아 더 좋은, 서른 살을 맞았다. 지난 30년 동안 차근차근 기반을 다졌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뜻을 세웠다. 그 결과 세계 3대 연금으로 도약했고, 서른에 들어서자마자 임의가입자 30만명을 돌파했다. 그야말로 이립의 나이답게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숲을 일궈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숲을 더욱 윤택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줄, 오랜 시간 갈급해오던 샘물 같은 것들을 꺼내어놓을 시간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고령화가 가속화될수록 노후 복지업무를 수행하는 공단의 책임과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국민연금공단은 오늘 다시 새롭다. 여전히 할 일은 많고 갈 길도 멀다. 웅장한 숲일수록 샘이 깊은 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서른의 숲을 다지고 있을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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