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세계 문화유산을 만나다
자연과 학문의 공간,
한국의 서원
한국의 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논산 돈암서원
조선시대 서원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경쟁과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점점 더 각박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은 잊고 지내왔던 전통의 공동체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은 잊고 지내왔던 전통의 공동체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학문을 사랑한 나라, 조선
조금 유별나다고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학구열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이 작은 땅 위에 무려 900개 정도의 서원이 있었다고 하니 그 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서원은 성리학을 수양하는 공간으로 사실 한국에만 있었던 기관은 아니다. 유학 문화권에 속하는 중국과 일본, 베트남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서원은 입신출세보다는 지역의 존경하는 선현들을 사당에 모시고 그분들의 정신과 학문을 계승하고 제향한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600여 개의 서원이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이 19세기 흥선대원군에 의해 훼철 되었다가 복원된 것이다. 이때 훼철되지 않고 살아남은 서원의 숫자는 47개에 불과하다. 서원 철폐 정책은 피해갔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파손된 서원들도 발생했다.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원들은 이런 역사적 위험 속에서 살아남아 원형을 유지하며,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들이다.
서원이 지닌 특징 중 하나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은 대부분 명승으로 서원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도 보호 대상이다. 사색과 사유의 계절이라고도 불리는 가을은 서원을 방문하기에 딱 좋은 시기다. 9곳의 서원 중 안동의 도산서원과 논산의 돈암서원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겨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600여 개의 서원이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이 19세기 흥선대원군에 의해 훼철 되었다가 복원된 것이다. 이때 훼철되지 않고 살아남은 서원의 숫자는 47개에 불과하다. 서원 철폐 정책은 피해갔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파손된 서원들도 발생했다.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원들은 이런 역사적 위험 속에서 살아남아 원형을 유지하며,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들이다.
서원이 지닌 특징 중 하나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은 대부분 명승으로 서원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도 보호 대상이다. 사색과 사유의 계절이라고도 불리는 가을은 서원을 방문하기에 딱 좋은 시기다. 9곳의 서원 중 안동의 도산서원과 논산의 돈암서원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겨본다.
천 원짜리 들고 한석봉을 만나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위인이 궁금하면 그 나라의 화폐를 보면 된다. 화폐에 들어가는 인물은 역사와 정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천 원권에 담긴 인물은 바로 퇴계 이황이다. 앞면에는 이황의 초상화와 함께 생전 그가 아꼈다는 매화가, 뒷면에는 그가 제자를 가르쳤던 도산서당의 전경을 담은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그려져 있다. 예전에 사용하던 천 원짜리 구권에는 계상정거도 대신 현재 도산서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도산서원을 찾을 때는 미리 천 원짜리를 한 장 준비해, 지폐에 담긴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비록 현재 도산서원의 모습은 아니지만, 신권에 있는 계상정거도를 보며 도산서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영지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안동호가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골짜기에 도산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는 서원으로 가는 길이 소나무 숲 사이로 운치 있게 나 있었는데,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길도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지만, 소나무 숲 사이의 길은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도산서원은 이황이 직접 설계도면을 그리고 지은 도산서당에 훗날 그의 제자들이 이황을 기리는 사당과 강당을 지으면서 서원으로 완성됐다. 그래서 도산서원의 건물들은 이황의 선비 정신이 담겨 검소한 기풍이 묻어난다. 도산서원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역시나 도산서당이다. 4년이라는 시간 끝에 도산서당이 완성되었을 때, 이황이 집이 너무 크게 지어졌다며 후회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도산서당을 나와 서원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진도문에 들어선다. 도를 향해 나아간다는 문을 통과하기 전에 잠시 뒤를 돌아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 안동호 일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이 문을 넘던 유생들이 뒤돌아 보았을 풍경은 다른 모습이었겠지만, 아마도 그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시금 가다듬었을 것 같다. 가로질러 보이는 전교당은 유생들이 자기 수양을 하고 생도들을 교육하던 장소이다.
전교당에서는 반가운 인물을 한 명 더 만날 수 있는데, 바로 명필로 유명한 한석봉이다. 이야기 속에서만 듣던 한석봉의 글씨를 도산서원에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전교당에 걸려있는 ‘도산서원’ 네 글자는 한석봉이 선조의 명을 받아 쓴 것이라고 한다. 그 양쪽으로는 ‘박약재’라는 현판이 달린 동재와 ‘홍의재’라는 현판이 달린 서재가 위치하고 있다. ‘박약재’와 ‘홍의재’ 모두 논어에서 따온 것인데, ‘열심히 학문에 정진한다’는 뜻이다.
한국 정신문화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도산서원이기에 위풍당당하고 수려한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 상상했다. 어쩌면 물질주의에 익숙해져 있는 선입견으로 도산서원의 모습을 그렸었나 보다. 선비의 기본이 청렴결백인데, 이황의 정신을 이어받은 도산서원이 웅장한 느낌의 건물이었다면 그것이 더 이질적이었을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단정하게 관리되고 있는 풍경은 오늘날 보여주기 식에 급급한 우리의 모습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지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안동호가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골짜기에 도산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는 서원으로 가는 길이 소나무 숲 사이로 운치 있게 나 있었는데,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길도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지만, 소나무 숲 사이의 길은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도산서원은 이황이 직접 설계도면을 그리고 지은 도산서당에 훗날 그의 제자들이 이황을 기리는 사당과 강당을 지으면서 서원으로 완성됐다. 그래서 도산서원의 건물들은 이황의 선비 정신이 담겨 검소한 기풍이 묻어난다. 도산서원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역시나 도산서당이다. 4년이라는 시간 끝에 도산서당이 완성되었을 때, 이황이 집이 너무 크게 지어졌다며 후회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도산서당을 나와 서원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진도문에 들어선다. 도를 향해 나아간다는 문을 통과하기 전에 잠시 뒤를 돌아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 안동호 일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이 문을 넘던 유생들이 뒤돌아 보았을 풍경은 다른 모습이었겠지만, 아마도 그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시금 가다듬었을 것 같다. 가로질러 보이는 전교당은 유생들이 자기 수양을 하고 생도들을 교육하던 장소이다.
전교당에서는 반가운 인물을 한 명 더 만날 수 있는데, 바로 명필로 유명한 한석봉이다. 이야기 속에서만 듣던 한석봉의 글씨를 도산서원에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전교당에 걸려있는 ‘도산서원’ 네 글자는 한석봉이 선조의 명을 받아 쓴 것이라고 한다. 그 양쪽으로는 ‘박약재’라는 현판이 달린 동재와 ‘홍의재’라는 현판이 달린 서재가 위치하고 있다. ‘박약재’와 ‘홍의재’ 모두 논어에서 따온 것인데, ‘열심히 학문에 정진한다’는 뜻이다.
한국 정신문화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도산서원이기에 위풍당당하고 수려한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 상상했다. 어쩌면 물질주의에 익숙해져 있는 선입견으로 도산서원의 모습을 그렸었나 보다. 선비의 기본이 청렴결백인데, 이황의 정신을 이어받은 도산서원이 웅장한 느낌의 건물이었다면 그것이 더 이질적이었을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단정하게 관리되고 있는 풍경은 오늘날 보여주기 식에 급급한 우리의 모습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예학의 산실, 논산 돈암서원
논산에 있는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의 예학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김장생은 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의 새로운 흐름인 예학(禮學)연구를 선도한 인물이다. 사화와 잦은 전쟁으로 나라가 흔들렸던 16, 17세기 그는 예학을 통해 나라를 바로 잡으려 했다. 젊은 시절 과거에 응하지 않았던 김장생은 관직생활보다는 학문 연구에 집중하며 조선 예학의 중요한 기초를 마련했으며,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 냈다. 서원 서북쪽에 있던 돈암이란 큰 바위 이름에서 가져와 서원의 이름을 돈암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서도 철폐되지 않고 보존되었지만, 숲말의 지대가 낮아 홍수 때마다 서원 앞뜰까지 물이 차올라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김장생의 부친인 김계휘가 강학하던 공간인 정회당, 김장생이 머물며 학문을 닦고 죽음을 맞이한 양성당. 그리고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는 보물 응도당까지. 농지가 펼쳐진 넓은 대지에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를 엄숙함을 자아낸다.
서쪽 담벼락에 자리잡은 응도당은 보물 1569호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다른 건물들과 조금 떨어져 자리 잡고 있지만, 실질적인 강당의 역할을 하는 건물답게 제일 규모가 크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서원에 어울리는 웅장함을 응도당 건물에서 느끼게 된다. 응도당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양성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 바탕에 하얀색으로 쓰여져 있는 현판이 인상적이다. 대청칸 뒤편으로 좁은 툇마루가 있는데, 앞쪽과 뒤편 모두 문이 달려있어 여름에는 앞뒤로 문을 개방하고 선선한 바람을 건물 내부로 통하게 하였다.
양성당 앞에는 원정비가 있는데, 이 비에는 서원을 세운 배경을 비롯해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의 행적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다.
돈암서원에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바로 정회당이다. 원래는 대둔산 자락의 고운사터에 있었는데, 195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강당의 이름인 ‘정회’는 학습하는 정진 자세 중 ‘고요하게 실천하면서 수행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말보다 행동이라고 너무 쉽게 자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이 말조차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말로써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묵묵히 은둔하며 학문에 정진한 김장생의 삶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김장생의 부친인 김계휘가 강학하던 공간인 정회당, 김장생이 머물며 학문을 닦고 죽음을 맞이한 양성당. 그리고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는 보물 응도당까지. 농지가 펼쳐진 넓은 대지에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를 엄숙함을 자아낸다.
서쪽 담벼락에 자리잡은 응도당은 보물 1569호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다른 건물들과 조금 떨어져 자리 잡고 있지만, 실질적인 강당의 역할을 하는 건물답게 제일 규모가 크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서원에 어울리는 웅장함을 응도당 건물에서 느끼게 된다. 응도당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양성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 바탕에 하얀색으로 쓰여져 있는 현판이 인상적이다. 대청칸 뒤편으로 좁은 툇마루가 있는데, 앞쪽과 뒤편 모두 문이 달려있어 여름에는 앞뒤로 문을 개방하고 선선한 바람을 건물 내부로 통하게 하였다.
양성당 앞에는 원정비가 있는데, 이 비에는 서원을 세운 배경을 비롯해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의 행적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다.
돈암서원에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바로 정회당이다. 원래는 대둔산 자락의 고운사터에 있었는데, 195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강당의 이름인 ‘정회’는 학습하는 정진 자세 중 ‘고요하게 실천하면서 수행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말보다 행동이라고 너무 쉽게 자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이 말조차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말로써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묵묵히 은둔하며 학문에 정진한 김장생의 삶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