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새로운 국민연금 개혁안을 국민 앞에게 내놓았다. 2003년 제1차 재정계산 결과에 의거하여 마련(2004년 국회에 제출)된 국민연금개혁안과는 사뭇 다르다. 이것으로 국민연금 개혁문제를 둘러싸고 지난 3년간 지루하게 지속되어왔던 논쟁의 종지부를 찍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논의가 시작될 것인지는 오직 국민의 판단에 달려있다. 정부는 금년 내로 새로운 개혁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개혁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각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4 년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진 개혁논의의 과정, 새로운 개혁안의 배경과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향후의 전개방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2004년 국회에 제출돼 지금까지도 국회에 계류 중인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 법안은 보험료를 현행 9%에서 15.9%로 인상하고 급여수준을 60%에서 50%로 인하하는 재정안정화 대책을 골자로 한다. 거기에 출산 크레딧 제도의 도입 등 사각지대 보완대책을 주로 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국민연금 적용대상에서 제외 되었던 기존 노인계층 등에 대한 사각지대 문제가 크게 대두되자, 정부와 여당은 노인복지법상의 경로연금 수급대상과 급여수준을 일부 확대한 효도연금을 도입하자는 복안도 제시됐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정부안에 대해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비록 보험료율을 올리고 급여수준을 낮추더라도 2070년 이후에는 기금이 고갈되므로 정부의 재정 안정화 대책은 여전히 완전한 대책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효도연금안도 국민연금의 납부예외자 및 체납자 문제 등 제도내적인 사각지대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비판의 핵심이었다. 이에 한나라당은 결국 2004년 말 현행제도를 조세방식의 기초연금과 보험방식의 비례연금으로 이원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혁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한나라당의 조세방식 기초연금 개혁안은 분명 제도 내외적 사각지대 해소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도입 첫해만 해도 10조원 규모의 막대한 국고부담이 필요하고 제도의 구조적 변화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정부와 여당이 쉽게 수용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2004년 내내 보건복 지상임위원회에서 두 개혁 법안에 대한 변변한 심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채 해를 넘겼고, 2005년에도 두 개혁안을 둘러싼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 했을 뿐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처럼 평행선을 달리고 있던 연금개혁 논의는 금년 초 유시민 의원이 신임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유 장관은 임명 당시 한나라당의 입장을 상당히 수용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동안 국민들은 많은 기대를 가지고 새로운 절충 안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금년 6월 초 정부는 국민연금 신개혁안을 전격 발표하였다.
이 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종전 정부안보다 더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성을 강화하여 연금재정에 대한 국민 불안 및 불신을 크게 덜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급여수준을 종전 개혁안에 비해 10% 포인트를 더 낮춰 2018년 50% 그리고 2028년에 40%로 단계적으로 인하하고,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13% 정도까지만 인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험료 수준의 설정은 무엇보다 저소득 지역가입자를 포괄하는 현행 체계의 특성상 그 수준 이상으로의 인상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인식이 반영되었다. 그 대신 급여수준을 대폭 삭감하여 재정 안정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혁방향이 잡힌 듯하다. 급여수준을 40%로 삭감한 것은 현재 당장 그러한 수준으로 낮춘다면 급여의 적절성 측면에서 무리가 있겠지만 20년 정도의 시간 여유를 가지고 점진적으로 낮추는 것은 현실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즉, 작년 말에 도입된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이 그 동안 성숙하고 다층보장체계가 어느 정도 갖추어 진다면 국민연금의 급여수준 감축 공백을 상당부분 메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편, 이번 신개혁안의 큰 특징 중 또 다른 하나는 종전 정부안의 맹점으로 지적되었던 제도 내외적인 사각지대 해소대책을 강화하였다는 점이다. 그 핵심은 바로 기존의 경로연금이나 효도연금(안)에 비해 수급대상자(65세 이상 노인의 45%)와 급여수 준(8만원)을 대폭 확대한 기초노령연금제의 도입이다. 기초노령연금제는 기존 노령계층의 사각지대를 대폭 완화하는 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도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최저소득보장제로 발전시켜 저소득 및 무소득의 기존가입자 계층의 사각지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또 기초연금의 도입과 같은 근본적인 개혁문제는 사회적 합의기구이자 법정 상설기구로서의 성격을 지닌 ' 연금제도개선위원회'를 두어 장기적으로 검토하자는 것도 제안하고 있다.

아쉽게도 정부의 신개혁안에 대한 각계각층의 반응은 의외로 차갑다. 정부의 뜨거운 구애에 대해 특히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 등 정치계는 매정하게 거절하고 있다. 먼저, 소득 및 자산조사를 전제로 하는 기초노령연금으로는 여전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는 미흡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전제로 하고 있는 광범위한 소득 및 자산조사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바람직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아울러 급여수준 40%가 적정성이 있으려면, 퇴직연금 등이 잘 발달하여야 하고 여성의 근로활동이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향후 충족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급여수준을 40%로 낮추려면 기초연금의 도입을 전제로 할 경우에만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 및 시민단체 등의 반응도 뜨겁지만은 않다. 정치계와 유사한 지적과 함께 정부가 최근 마련한 신개혁안이 적절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성안된 것이 아니라 거대 야당의 눈치를 보고 급히 마련한 정치적 절충안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국민 연금발전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마련하여 다시 개혁안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도에는 대선이 있어 현실적으로 연금개혁 논의가 어렵고, 개혁을 하루라도 미루면 하루 수십 조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다시 2-3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정부는 금년 말까지를 개혁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적극적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아직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으므로 체계적인 대국민 설득과 홍보를 통해 국민의 이해와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구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반영해야 한다. 정치권도 당리당략을 초월하여 국민연금 개혁논의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개혁방향에 있어 지금까지 형성된 깊은 골을 메울 수 있을 것이며 또 다른, 기존의 어떤 안보다 국민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더 나은 타협안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