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록 정조 10년(1786년) 9월 8일(음력)’의 기록이다. 중국사신단이 돌아가는 길의 상황을 상세히 보고한 내용이다.

중국 사신이 돌아간다. 사신을 배웅하는 반송사와 관할지역 황해도, 경기도 감사 등이 중국사신을 배웅하고 있다. 국왕 정조에게 보고를 올린 날은 9월 8일(음력)이다. 중국사신이 말을 갈아 탈 때, 과일과 더불어 화전을 올린다. ‘내일(9월 9일)’이 중양가절이다. 홀수는 양의 수다. 1, 3, 5, 7, 9등이다. 1월 1일은 설날이다. ‘9’는 양의 수 중 가장 큰 것이다. 가장 큰 양의 수 ‘9’가 겹치는 중양은 큰 명절이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9월 9일’을 각별히 여긴다. 우리도 오래전에는 음력 9월 9일을 의미가 있고 중요한 날로 여겼다.

“화전은 중양가절의 절식, 즉 계절음식”이라고 하자 중국사신이 답한다. “화전을 통해 두 나라 풍속이 서로 유사함을 알겠다.” 중국에서도 중양절에 화전 절식을 먹었다는 뜻이다. 이날 중국사신에게 전한 것은 ‘국화 화전’이었을 것이다. 정조대왕 시기보다 약 180년쯤 앞선 시대를 살았던 교산 허균(1569-1618년)은 “성소부부고_도문대작”에서 서울의 계절음식을 이야기한다. 진달래 등 여러 가지 꽃으로 빚은 화전도 설명한다. 그중 국화화전이 ‘가을의 화전’임을 알 수 있다.

이중 괴엽병, 두견화전, 이화전, 장미전, 국화병은 모두 화전이다. 괴엽병은 회화나물 이파리를 얹은 것이다. 꽃은 아니지만 이파리로 꽃무늬를 만들었다. 이화는 배꽃이고, 두견화는 진달래다. 교산은 ‘가을에는 국화병’이라고 못 박았다. 한반도에서 가을에 구하기 쉬운 꽃, 만들기 쉬운 화전은 국화, 국화병이다. 중국사신들에게 국화병을 대접했으리라 믿는 이유다. ‘부연일기_주견제사’는 작자미상의 중국 기행록(1828년, 순조28년)이다. 대중국 사신단 일행 중 한 명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책에도 ‘연화전(蓮花煎)’이 나타난다. 다만 글을 쓴 계절을 알 수 없으니 연꽃으로 빚은 떡인지, 연꽃 모양의 떡인지는 알 수가 없다.

화전, 남녀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흔히 화전, 화전놀이를 두고, ‘봄철 사대부 집안 여자들이혹은 서민 여자들이 바깥으로 나가서 꽃으로 떡을 빚어 먹으며 노는 일’이라고 말한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여자들이 봄철 화전, 화전놀이를 즐긴 것은 사실이나 남녀노소, 신분의 낮고 높음을 가리지 않고 계절에 맞는 꽃으로 화전을 즐겼다는 표현이 맞다.
오래 전에는 화전과 더불어 ‘전화(煎花)’, ‘전화병(煎花餠)’으로도 표기했다. 화전은 꽃으로 빚은 혹은 꽃 모양을 지닌 떡 혹은 전병(煎餠)을 이르는 말이다. 전병은 부꾸미다. 떡을 번철에서 기름으로 지진다. 대부분 넓적한 모양이다. 넓적한 곳에 꽃을 얹거나 곡물 등으로 꽃모양을 낸다.

화전을 부쳐 먹으며 노는 일은 ‘전화놀이’라고도 표현한다. 봄철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꽃을 구할 수 있으면 꽃으로 혹은 꽃무늬를 얹어서 넓적한 전병을 만든다. 문제는 단순히 화전만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23년 3월 2일의 기록 중 성종이 ‘전화’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이 있다.

“금년에 흉년이 들어서 시중에 물가가 올라가므로, 회음(會飮), 전화(煎花), 병멸(餠 ) 같은 낭비하는 일들은 일체 금지시킨 것이다.” ‘회음’은 모여서 술 마시고 노는 일을 이르고, ‘병멸’은 쌀의 사래기 등으로 만든 떡으로 추정한다. ‘전화’는 화전을 먹으며 노는 일이다. 전화놀이, 화전을 먹으며 노는 일은 소중한 곡물을 낭비하는 것이다. 흉년, 물가가 오를 시기에는 금할 수밖에 없었다.

‘국왕은 느슨하게, 신하는 엄격하게’를 고집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조 3년(1457년) 4월 22일의 기록이다. 사헌부 장령(掌令) 김명중(金命中)이, 술 마시고, 거문고 타면서 궁궐 대문 앞을 지나가는 남녀 7, 8명을 잡아온다. 장령은 사헌부의 정4품으로 낮지 않은 벼슬아치이며,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세조의 태도는 반대다. “미천한 백성은 근심, 걱정하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는데 왜 잡아왔는가”라고 따진다. 더하여 “금주하지 마라고 교지(명령)를 내렸는데 왜 잡아 왔느냐”고 되묻는다. 이 기사의 끝 부분에 사관이 말한다. “(전략) 귀가(貴家)의 부인들도 또한 많이 본받아서 장막을 크게 설치하고는 아들과 며느리를 다 모아서 호세(豪勢)와 사치를 다투어 준비하는 것이 매우 극진하였다. 두견화(杜鵑花)가 필 때에 더욱 많게 되니, 이름하기를 ‘전화음(煎花飮)’이라 하였다.” 진달래(두견화) 필무렵의 전화음을 각별히 설명하는 것을 보면 이 무렵에는화전놀이를 즐기며 술을 마시는 것이 비교적 생경스러웠음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화전과 화전놀이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제사상에도 화전을 올리고, 민간, 궁궐을 가리지 않고 화전, 화전놀이를 즐겼다. 청장관 이덕무(1741~1793년)는 ‘청장관전서 제6권_영처잡고2’에서 9월 9일의 화전을 말한다.

‘화고’는 기름에 지진 ‘꽃 떡’, 즉 ‘화전’이다. 국화꽃이 만개하지 않아 화전을 빚을 수 없다. 국화 이파리로 모양을 내서 화전을 빚었다. 국왕도 화전놀이를 즐겼다. 정조 18년(1794년) 3월 13일의 기록이다. “(전략) 세심대에 올라 시신(侍臣)들에게 밥을 내려주고 여러 신하들과 활쏘기를 하였다. 선희궁의 소원(小園)에 도로 와서 화전(花煎) 놀이를 하면서 상이 칠언절구로 시를 짓고는 군신들에게 화답하여 바치도록 하였다.” 군신이 세심대로 봄나들이를 나갔다. 밥을 먹고 활쏘기를 한다. 궁궐로 돌아와 화전을 부쳐 먹으며 시를 주고 받는다. 봄날의 아름다운 소풍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