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국민연금개선안이 국회에서 다시 심의도 못하고 넘어갔다. 어떻게 보면 급여를 낮추고 보험료를
높이자는 매우 쉬운 것인데 합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적 사안에는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사안과 배제되어야 하는 사안이 있다.
정치가 배제되어야 하는 사안 중에 가장 큰 것이 국민연금, 국민의 노후 생계에 관련된 문제다. 우리의
경제
사정에 비하여 고령화가 너무 급속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신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후환이 매우 클
것 같다. 이성적 논리가 포퓰리즘의 정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 문제의 해결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국민연금의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4,700만
국민이 모두 관련된 사항이고, 선거를 하면 적어도 중년이상의 유권자가 반 이상인데, 어느 국회의원이
연금급여를 줄이고 보험료를 늘리자는 안에 찬성할까?
국민연금 개혁은 모든 국민이 당사자여서 어느 나라든 정권에 관련된 사항이다. 그래서 항상 대통령까지
나서고 정권이 바뀔 것을 각오하고 한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국민연금제도를 개정하겠다고
연초 취임 이후 계속 전국을 순회하며 국민을 설득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개인퇴직계정으로 전환시키겠다는
내용이 매우 파격적이지만 자신만만하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돈이니 국민들이 직접 운용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정부의 책임을 싫다는 개인에게 떠미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부시 대통령의 인기는
최하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오너십 소사이어티 (Ownership Society)를 국민연금부터
직접 실천해 줄 것을 국민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제 미국 국민들은 나중에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분명히 국민연금을 직접 운영하도록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연금기금이 35년 후인 2040년도에나 고갈되는데도, 민주당은 심각하지 않다고 하는데도 나섰다.
그러나 그가 옳다.
정권을 바꿀 각오를 하고 바꾸었다고 해서 국민연금 개혁으로 정권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비록 바뀌는 과정은 힘들지만 국민은 서서히 국민연금개혁의 필요성을 이해한다. 그렇게
국민연금은 발전해 왔고 그렇게 발전해 갈 것이다.
서민들을 위하여 지금의 고급여, 저부담의 국민연금을 유지하는 것은 거꾸로 그들의 복지를 거두어 가는
것이 될 수 있다.
국민연금이 현재와 같은 제도 하에서 적자가 되면 결국은 연금액을 축소하게 되는데, 이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계층은 바로 약속된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온 저소득 노인층이
된다. 소득계층간의 이동이 거의 없다고 보면(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현재의 저소득층이 바로 그 피해자가
된다. 고소득층은 늙어서도 국민연금에 대한 기대를 크게 하지 않는다.
참여정부가 서민을 위하는 정부라면 지금 바로 국민연금을 개혁하고, 서민들이 안정적으로 연금을 보장받도록
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연금재정이 적자가 되면 정부예산을 투입한다고 하지만, 각 국은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의 예산지원을 줄이고 있다. 각 국은 경제성장을 유도하기 위하여 개인소득세에서 오히려 누진율을
낮추는 소득세제 형태로 이행하고 있고, 법인세율도 투자증대를 위하여 인하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위하여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면 국민연금 적자 부담은 저소득층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더
크다.
정부도 더 이상 국회의 결정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국민연금기금을
사용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국민연금의 심각한 상황을 방관한다면 자칫 기회주의적 정부로 남을 수 있다.
담당 장관 뿐 아니라 범정부적으로 국회에 대한 로비라도 시작해야 한다.
야당은 기초연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초연금 때문이라면 더욱 법 개정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
첫째, 기초연금의 개념은 지금도 현재의 국민연금
내에서도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다. 연금급여는 기초부분과 소득비례부분으로 나뉘어져서 결정된다. 따라서
기초부분에 대한 비중을 높이면 야당이 생각하는 기초연금의 성격이 강해진다. 그것으로도 족하지 않으면
기초부분에 대한 급여조달을 정부재정으로 충당하도록 하
면 된다. 보다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둘째, 작년 말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의 통과로
올해 말부터 퇴직금제도가 퇴직연금제도로 전환된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88년 전국민 연금제도의
시작이후 불과 20년도 안되어서 개인연금, 기업중심의 퇴직연금, 정부중심의 국민연금으로 이어지는
3층 연금 시스템이 완성된다. 기초연금안은 정부가 모든 노인을 위하여 연
금 재원을 완전히 조세로 조달한다는 안이다. 이것은 국민들의 노후생계에 대한 자립의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와도 역행하는 것이다.
셋째,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모르겠지만 기초연금의
개념으로 이미 경로연금이 지급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월 평균 소득 약 58만원 이하 소득가구의 노인에게
많게는 5만원까지 지급한다. 강력한 로비력을 갖추고 있는 노인계층은 더 많은 경로연금과 수혜자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기초연금은 이 제도의 연장선상에 있
다. 고령화가 심각해지면 소득이 낮은 노인층에게 경로연금을 더 지급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기초연금이라고
하면 된다.
현재와 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국민연금법의 급여와 보험료 결정에 관한 조항의 개정이 필요하다. 급여는
국회가 결정하고, 보험료율은 5년마다 재정 재계산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유권자가 무서워서 합리적 보험료 인상을 거부하는 상태는 없어질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상한 것은 그 많은 시민단체들의 무관심이다. 시민을 위한 단체라면 이제 나서야 한다.
정작 나서야 할 때 나서지 못하면 시민단체는 본래의 사회적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 국민연금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시민운동을 제자리로 돌리는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치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시민단체는 더
이상 양지와 음지를 구분하지 말았으면 한다.
세상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