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빗줄기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퍼부어 대는 이른 아침입니다. 언제 일어나셨는지 주방 식탁 위엔 벌써 구수한 된장찌개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이 우리가족을 기다립니다. 여느 집들도 마찬가지로 매일 아침 똑같이 일어나는 일상적인 풍경이겠지만 우리가족은 늘 새로운 아침에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를 소중히 여깁니다. 비록 커다란 집은 아니지만 우리가족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우리집’이 있구요, 그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 오늘 그저 평범하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 가족의, 아니 우리 부모님이 행복한 노후를 열심히 저축하시는 모습들을 이 글 속에 그려봅니다.

우리집이 처음으로 국민연금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마을 이장 할아버지의 강제성을 띤 권유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새댁, 나도 죽겠다. 요번 주 안에 신청서 받아가야 되는데 다 가입 안 한다하고……. 내가 알아서 제일 낮은 등급으로 하나 가입할께. 없는 요랑 하고 하나 신청해 놔라.”하시는 이장할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으로 1995년 7월에 농·어촌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국민연금에 가입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그땐 매월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 저금하는 셈치고 그냥 가입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매월 납부해야할 돈이 그때 보다 10배나 더 많아져 가계에 부담도 큽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사회보장제도로서 자리를 잡으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높은 관심과 이해가 꼭 필요하다'시며 아들 없는 아빠, 엄마는 국민연금이 아들이라며 빙그레 웃으십니다.

우리 아빠는 조그만 화물 운송업을 하시는데요,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그것마저도 많이 힘이 드시는가봅니다. 그래도 얼굴엔 늘 웃음이 가득하시고요, 가끔씩 내가 ‘아빠 힘들제?’하고 물으면 항상‘힘들지 않다’하시는 거짓말쟁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엄마, 음. 엄마는 병이 아주 심각하십니다. 그것도 불치병(?) 놀라셨죠? 그 병은 바로 공주병이랍니다.

세상에서 엄마보다 이쁜 미시아줌마는 없다고 믿으시죠. 그래도 고칠 순 있겠죠? 아줌마들 중에서라는 단서를 하나 붙였으니까요. 그런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며 우상으로 여기는 분이랍니다. 요즘 아빠를 좀 돕겠다며 화장품 외판을 하시고 계시는데요, 이뻐서 사람들이 잘 사준다나요? 또 그런 우리 엄마는 가족을 위해서는 그 작은 체구로 하루종일 분주하게 움직이면서도 즐거워하시는 걸 보면 그리 미운 공주는 아닙니다.

마치 온 국민에게 고루 혜택을 주려 하는 고마운 국민연금과도 같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많은 질타와 고통 속에서 마지막 한사람까지 혜택을 받길 바라는 조건 없는 국민연금의 희생과도 같다고 여겨집니다. 국민연금이야말로 어머니의 마음이 아닐까요?

그리고 저는 요 딸 밖에 없는 우리집의 살림밑천이자 아들이죠. 늘 아빠, 엄마의 멋진 딸이 되려 노력하구요, 이번 학기말 시험에서도 1등을 했답니다.

그리고 내 동생, 2학년이지만 엄마는 늘 동생 볼에다 뽀뽀를 해대며“엄마 장난감 맞제?”하시면서 막내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퍼부어 대십니다. 그럴 때면 “응~”하며 콧소리를 내는 내 동생……. 가끔 얄미워집니다. 하지만 잠잘 때만은 너무나도 귀여운 천사와 같습니다. 이런 우리가족은 각자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또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정말 평범한 보통 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