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바다와 계곡을 찾는 피서 철, 여가도 즐기고 건강도 챙기는 여행 계획을 세울 때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해 올 여름이 얼마나 무더울지 지레 걱정부터 앞선다.

예전에는 에어컨과 선풍기가 없어도 지혜롭게 무더위를 이겨냈다. 저녁상을 물린 뒤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누워 깜박이는 별을 벗 삼아 부채를 부치면 더위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어정칠월'이라 농사일도 한숨 돌리고 햇살이 뜨거운 한낮이면 어른들은 동네 어귀 느티나무 그늘아래서 다래끼를 만들거나 장기를 두었다. 통기성이 좋은 모시·삼베옷 사이로 바람 끝만 스쳐가도 "어! 제주도 바람 한번 시원하다"며 고마워했다.

찬물에 밥을 말아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먹거나, 오이냉채에 찬밥을 말아먹으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도 사라진다. 콩을 삶아 갈아 체로 받친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는 콩국수는 한 여름의 별미다. 삼복더위엔 인삼과 찹쌀, 대추, 마늘 등으로 영계의 속을 채워 고아낸 삼계탕으로 기력을 보충했다.

가장 손쉽고 효과 만점인 피서 법은 시원한 계곡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이나 냇물에서 물고기를 잡는 천렵이다.

변변한 놀이 시설이 없던 그 시절 천렵이 놀이고 더위사냥이었다. "앞산이 이마를 받고, 뒷산이 뒤통수친다."는 깊은 산골짜기 우리 마을은 천렵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내는 차고 깨끗해 물고기들의 천국이었다. 퉁가리, 꺽지, 피라미가 흔했다. 족대를 들고 으슥한 구석이나 수초 숲을 잽싸게 훑으면 서너 마리씩 잡혔다.

어른들은 지렛대로 바위를 흔들거나, 해머로 충격을 줘 물고기들이 밖으로 나오면 뜰채로 건져 올렸다. 아이들은 삽으로 뗏장을 떼어 물줄기를 막고 고기를 잡았다. 아래쪽에 족대를 대놓고 돌들을 들어내면 어느 사이에 종다래끼에 물고기가 가득 차곤 했다. 독풀을 으깨 물에 풀어 송사리를 잡기도 했고, 밤이면 횃불을 들고 살금살금 수초를 헤치며 메기나 뱀장어를 잡았다.

잡은 물고기는 집으로 가져가 회쳐먹고 지져먹고 볶아먹기도 했다. 어른들은 냇가에서 매운탕이나 어죽을 끓여 막소주를 마시며 더위를 쫓았다. 내장 뺀 물고기를 솥에 안친 뒤 된장이나 고추장을 풀고 풋고추와 파, 애호박을 넣어 끓인 즉석 매운탕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요즘은 온천을 만든다며 자연을 망쳐놓아서 물고기 잡기는 물론 다슬기 줍기도 어렵다. 천렵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말끔하게 씻어 주던 서늘한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