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문충성 시인에 의해 치열한 싸움터로 노래 되었던 제주도의 바다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그 중에서도 여행객들의 발길이 가장 잦아지고 있는 곳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올인’으로 유명해진 섭지코지다. 바로 옆에 있는 성산 일출봉과 함께 제주도 최고의 관광명소로 확실하게 자리 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섭지코지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었다. 천혜의 풍광을 지니고 있음에도 바로 인근에 있는 성산 일출봉의 유명세에 가려 찾는 발걸음이 많지 않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한적한 시골 바다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인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섭지코지가 제주를 찾는 여행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얻게 된 것은 드라마‘올인’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지노를 배경으로 사랑과 복수, 좌절과 인생역전을 그려낸 드라마‘올인’은 이색적인 소재와 짜임새 있는 구성, 이병헌과 송혜교 등 출연자들의 연기력에 힘입어 방영 초기부터 높은 인기를 얻었다. 또한 시청률이 높아지면서 드라마 촬영지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만 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끈 곳이 여주인공 민수연이 머물렀던 수녀원이었다.
아름다운 해안 절벽 위에 추억처럼 서있는 수녀원의 모습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아닐 수 없었다. 시청자들은 그곳을 궁금해 했고 직접 그곳에 가고 싶어 했다.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빠져 들어가 직접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거나, 적어도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거닐던 장소를 함께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시청자들이 거닐고 싶던 곳, 그곳이 바로 섭지코지였다.
탁 트인 바다, 파란 하늘, 쪽빛바다, 손에 닿을 듯 다가서는 성산 일출봉.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난 노란 유채꽃밭이 온통 시야를 뒤덮고, 여름이면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 절벽이 영혼까지 시원하게 씻어주는 곳. 낭만적인 풀밭 위에 조랑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생명처럼 솟아오른 갯바위 위에 앉아 낚시를 즐길 수도 있는 곳. 참으로 아늑하고 평화롭고 한가로운 풍경에 새삼 가슴이 훈훈해지는 곳.
섭지코지의 아름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수면의 높이에 따라 물 속에 잠겼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기암괴석들. 그 중에서도 높이 10여 미터에 이르는 선돌은 가히 서귀포 해안의 외돌개와 어깨를 견줄만하다.
그리고 선돌이 바로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는 하얀 등대 하나. 시원한 바람이 상큼한 바다냄새를 실어오는 등대 위에 서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 바로 이곳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자연히 주말이나 연휴에는 자가용이나 전세버스를 타고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쉼 없이 이어진다. 많을 땐 하루 1만 명도 넘는 인파가 다녀갈 정도이다.
섭지코지에서 바로 건너다 보이는 성산 일출봉은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의 하나다. 제주의 숱한 기생화산 중에서도 유일하게 바다 속에서 분출하여 굳어진 바위산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는 거대한 잔디구장 같은 분화구가 초원을 이루고 있다. 또 분화구 주변에는 하나의 성곽처럼 작은 봉우리들이 담을 두르고 있다. 이곳은 특히 일출이 유명하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아침 일찍 정상으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는 여행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구름이나 안개가 잦아 실제로 일출을 구경하는 여행객들은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