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 아파트단지에선 월요일마다 시골장터행사가 열린다. 그옛날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나선 실제 시골장터의 정취까지는 아니더라도, 좌판에 널어 놓은 농산물이며 후박한
인심은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기에 족하다.
그래서 월요일만 되면, 아이들 손을 잡고 아파트 장터를 찾는다.
햅쌀로 방금 빚은 찰떡이라며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는 아주머니,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중국산이 절대
아니라며 등 푸른 생선을 보여주는 아저씨며, 살짝 데운 파전과 도투리묵으로 막걸리 한잔하며 담소를
나누는 노인 분들까지, 판박이처럼 옛 모습 그대로 닮았다.
한 귀퉁이에서 뽕짝메들리로 신나게 가위질을 하는 엿장수 아저씨에게 엿 한 봉지를 샀는데, 천 원만
달란다.
“아니 이렇게 많이 주셨는데, 천 원가지고 장사가 돼요?”
“허허… 엿장수 마음이랑께요.”
훈훈한 정에 구수한 사투리까지 영락없는 시골장터 엿장수 아저씨 모습에 박장대소. 그렇게 산 엿한가락을
아이에게 권했더니, 안 먹는다고 손사래를 친다. 햄버거와 피자에 맛들인 요즘 아이들이고 보니 시대를
탓해야 하나? 힘들게 장을 보시고 엿 한가락 쥐어주곤 하시던 어머니, 그리고 동구 밖까지 나와 장에
가신 어머니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나의 옛 기억까지. 장터를 돌고 와서는 빛 바랜 어릴 적 사진첩을
펼쳐놓는다. 그 중에 장터에 가서 찍은 사진도 몇 장 되는데 어릴 적 일상으로 접하 고 자란 갖가지
풍경, 장을 보러 모여드는 시골 사람들의 진솔한 표정과 순박한 모습들이 볼 때마다 내 마음을 청량하게
한다.
비록 그 옛날 시골장터는 아니지만 평소엔 느끼지 못하는 지난 아련한 추억과 함께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요 행복인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