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결혼 10년 차 상구씨, 상구씨의 나이 이제 서른 아홉이다. 얼마 전 과장으로 승진도 하고 토끼 같은 자식, 여우같은 마누라까지 이제 남부러울 것이 없다 생각하던 차에 걱정이 하나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과장님, 과장님도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발끝이 안 보이시죠? 배에 가려서….”

사무실 여직원의 농담에 함께 웃어버리기도 했는데, 상구씨 문득 웃음을 멈추고 땅 밑을 바라보는데 이게 웬걸, 자신의 눈앞에 소담스럽게 불러온 배가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괜찮겠지’ ‘술,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는 자제해야지’하던 것이 어느 순간 자신이 삼십대 후반의 배 나온 아저씨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낀 것이다.

저녁식사자리 몇 숟가락 뜨던 상구씨, 이내 숟가락을 놓고 잔뜩 고민스런 표정으로 앉아있다. 아내 연정씨가“어디 아파요?”하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데, “여보, 민아 엄마, 나 다이어트 해야 하나봐”심각하게 말하는 상구씨의 모습에 연정씨 깔깔대며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무안한 상구씨는 이내 얼굴을 붉히며“왜 웃고 그래, 남 심각한데”연정씨를 나무란다.

“솔직히 당신 요즘 보면 나도 다이어트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게 어디 시킨다고 되나? 마음에서 우러나와야지, 당신은 일단 밤에 이것저것 먹는 습관부터 고쳐야 돼, 아참 그리고 술. 당신의 적은 술인 거 알지?”

“아니야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라도 충분해”라는 아내의 말을 기대했던 상구씨. 그런데 냉큼“당신은 다이어트 좀 해야 돼”라는 말을 듣고 나자 자신이‘정말 뚱뚱한가?’라는 생각에 더욱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구씨, ‘여기서 더 이상 배나온 아저씨의 모습으로 변해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한 달 동안 4kg 감량의 다이어트를 목표로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돌진하기로 했다. ‘내가 누군가? 한다면 하는 사람 아닌가? 기필코 해내서 꼭 날씬한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리라’결심했다. 상구씨는 퇴근길 헬스클럽으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 TV연속극을 보던 상구씨, 배속에서 의 꼬르륵거림을 느꼈다.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지우던 연정씨는 거울 속 상구씨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는다.

“참을 수 있겠어? 아까 보니까 저녁도 반공기만 하던데….”

“어, 괜찮아”

상구씨는 뱃속의 아우성을 무시하고 애써 태연한 척 하는데, 아내 연정씨는 그런 상구씨의 노력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배고프면 먹으라는 둥, 무리한 다이어트는 몸에 안 좋다는 둥 계속 상구씨의 노력을 방해만 한다.

“됐다니까”

퉁명스럽게 내뱉은 상구씨,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한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옆에 누운 연정씨는 이내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고 마는데, 상구씨는 잠은 안 오고 정신이 더욱 말똥말똥해지는 것이었다.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이제는 염소 한 마리, 염소 두 마리”그렇게 상구씨의 긴 밤은 이내 새벽을 맞고 있었다.


“어이 최 과장, 우리 오늘 삼겹살에 술 한 잔 어때? 간만에 땡기네?”

입사 동기 김 과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상구씨의 머릿속에서는 비상벨이 삐뽀삐뽀 울리기 시작했다.
소주 한 잔에 칠십 킬로칼로리, 삼겹살은 계산도 되지 않는다.

“어, 그게 좀 힘들겠는데….”

상구씨가 한발 빼려는 순간, 다시금 머릿속에서 유혹의 손길이 뻗쳐왔다.

“그래 오늘만, 내일부터 또 열심히 하지 뭐.”
그리고는 그 날 밤 상구씨는‘부어라 마셔라’하며, 소주를 들이키고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쓰린 속을 부여잡고 일어난 상구씨, 아내 연정씨는 꿀물을 들고 서서는 상구씨를 보고 충격의 멘트를 날린다.

“일주일 노력이 하루만에 도로아미타불이네?”


“어! 과장님, 요즘 살이 좀 빠지신 것 같아요. 얼굴선이 날렵해 지셨는데요.”

“최 과장, 살 좀 빠지니까 제법 미남형이네, 내가 왜 예전에는 몰랐었지?”

삼겹살 사건이후 상구씨는 식사도 줄이고 하루에 두시간씩을 운동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술의 유혹도 제법 이겨내고 아침 눈뜨는 일도 가뿐하기만 하다. 그리고 허리주변의 살들도 이제 서서히 빠져간다 싶어 즐거워하려던 찰라 일이 터지고 말았다,


회사의 업무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상구씨, 갑자기 주위가 핑그르르 하는 것을 느끼던 순간. 휘청하면서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과장님! 과장님!”

직원들이 상구씨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메아리치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