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옵소서!”

TV에서 방영하는 사극 드라마를 볼 때마다 늘 귓가에 맴도는 대사가 있었다.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옵소서!” 너무나 많이 들어 어떤 대사보다도 더 익숙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언제나 한 가지 질문이 존재했다.
‘도대체 종묘사직이 뭔데?’
모두가 알다시피 조선왕조는 유교를 기본 이념으로 삼은 나라다. 헌데 유교의 예법에 따르면 국가의 도읍지에는 반드시 세 공간이 마련돼야 했다. 왕이 머무는 ‘궁궐’,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종묘’, 그리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이 그것이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종묘가, 오른쪽에는 사직단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조선왕조 당시에는 해마다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내는 일이 국가의 대업이었기에 ‘종묘사직’이 국가를 상징하는 말이 된 것이다. 조선왕조 기품의 뿌리가 조상들을 존경하고 섬기는 마음에서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 왕실의 제례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세계문화유산, 종묘. 종로에 위치한 종묘 입구에 다가설 즈음 엄숙한 역사가 품은 오랜 흔적과 기운에 새삼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받는다. 위로 솟지 않고 옆으로 길게 늘어선 건축기법 때문일까. 종묘에서 맞는 하늘은 유독 더 높게 느껴진다.
종묘에는 크고 작은 건물이 여럿 있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정전, 영녕전, 그리고 공신당이다. 이 중 정전은 종묘의 중심으로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만약 당신이 종묘의 정전 앞에 서서 다른 건물에 비해 유달리 옆으로 길게 늘어졌다고 느꼈다면, 맞다. 단일 목조건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긴 건물로 알려져 있는 정전은 총 길이만 101미터에 이른다. 건물 내부에 모실 신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건물을 옆으로 증축한 것이다. 수평으로 길게 펼쳐진 건축기법은 이곳이 신과 왕이 만나는 엄숙한 공간임을 상징하기도 한다. 서양의 건축처럼 신을 직접 만난다는 명목으로 건물을 인위적으로 높이지 않았기에, 정전에는 신과 왕들이 자연스럽게 스치고 또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하늘과 땅 사이의 큼직한 공간이 열려있다.

종묘, 세월이 쌓은 품격

정전에 모신 신주는 태조의 신주를 비롯해 공덕이 있는 역대 왕과 왕비 49위이며,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를 비롯해 조선의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 34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조선에는 총 27대 왕이 이름을 올렸지만, 신주로 모시는 왕은 25위뿐이다. 왜 그럴까. 유교통치 이념을 근간으로 한 나라답게 종묘에 모실 수 있는 왕은 공덕을 인정받은 왕 뿐이기 때문이다. 즉, ‘종(宗)’과 ‘조(祖)’의 묘호를 받지 못한 연산군과 광해군은 왕으로서 문제가 많았다고 판단해 종묘에 신주를 모시지 않았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덕을 얼마나 중시 여겼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수평으로 길게 뻗은 정전 앞에는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마당 월대가 있다. 평지에서 1미터쯤 올라와 있는 월대는 신주를 모신 사당과 사람이 밟는 땅을 구분 짓는다. 1미터 남짓의 높이이지만 월대가 존재함으로써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의 경계가 명확하면서도 부드럽게 나뉜다. 그래서일까, 월대 끝에 서서 정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왕과 신이 만나는 하늘과 땅의 공간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경건해지는 마음을 갖게 된다.
정전 앞의 월대, 그 아래 동쪽에는 공신당이 있고 서쪽에는 칠사당이 있다. 공신당은 정전에 모신 역대 왕의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며 칠사당은 궁궐의 모든 일과 만백성의 생활이 무탈하게 잘 풀리도록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운행과 관계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신과 만날 수 있는 공간 정전. 조선을 지탱한 굳건한 믿음이 바로 여기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지금까지도 느껴지는 조용한 조선왕조의 확신이 이곳을 방문한 후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하다.

종묘에서 울려 퍼지는 종묘제례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