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좋고 영리한 별미

흔히 세발낙지를 낙지 중에서 최고로 친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세발낙지는 별도의 품종이 아니라 어린 낙지를 뜻한다. 발이 가늘고 부드러워 회로 먹기 좋아서 그리 불렀다. 세(細)란 가늘다는 뜻이고, 거기에 우리 말 ‘발’을 붙인 것이다. 보통 낙지는 가을이 깊어가면 점차 씨알이 굵어진다. 10월 이후에는 대낙지가 된다. 낙지는 먹는 법이 매우 다양하다. 낙지회도 몇 가지 방식이 있다. 세발 낙지는 그대로 손으로 통째로 먹거나, 나무젓가락에 감아 올려 먹는 방법이 산지에서 유행한다. 크기가 중간이라는 뜻의 중낙지 정도가 되면 탕탕이를 친다. 탕탕이란 도마에 낙지를 두고 탕탕 내리치는 소리를 말한다. 산지인 전라도 지역에 가서 산낙지회를 달라고 할 때는 머리째 통째로 씹는 것인지, 아니면 탕탕이인지 따로 구별을 해야 한다.
탕탕이를 주문하고 기다리면, 부엌에서 도마에 낙지 내리치는 소리가 ‘탕탕’ 들린다. 낙지 다리는 아주 탄력이 좋고 ‘썰기’ 방식으로는 쉬이 잘라지지 않아서 무거운 칼로 내리칠 수밖에 없어서 생겨난 요리법이다. 보통 참기름과 통깨를 뿌려내는 것이 산지의 방식이다. 그대로 먹거나, 초장을 찍어 먹을 수 있다.
낙지를 맛있게 먹는 법은 회 말고도 많다. 지역 산지에서는 낙지호롱을 든다. 젓가락에 감아서 장을 발라 구워낸다.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가며 먹는 맛이 좋다. 발이 길고 가느다란 중낙지가 알맞다. 큰 대낙지는 역시 탕이나 구이, 볶음이 제격이다. 연포탕이라는 음식은 원래 두부탕을 뜻하는 용어인데, 이제는 낙지를 삶은 국을 말하게 되었다. 서산 등 서해안 일대에서는 낙지박속국을 낸다. 박이 크게 열리는 가을에 만들어 먹는 것이다. 부드럽고 순한 맛의 박의 속을 파내어 낙지와 함께 끓이는데, 박이나 낙지의 맛 외에 숨은 맛으로 서해안에 흔한 바지락조개를 넣는다. 감칠맛과 낙지 살이 씹히는 맛이 조화롭다. 시원하고 속이 편해지는 해장음식으로 일품이다.
이런 음식은 실은 보약 못지않다. 간이 좋지 않은 환자가 익힌 조개즙을 내어 많이 마시는데, 과학적으로도 효과가 입증되었다. 낙지 역시 간질환자 등 환자들에게 좋다. 아미노산이 많고 기름기는 적으며, 소화가 잘되기 때문이다. 환자식 중에 낙지죽을 거론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가을 낙지가 맛있다고 하는 것은 이 무렵에 영양이 차고 힘이 좋기 때문이다. 가을에 많이 먹고 ‘뻘’ 속에서 겨울을 난 후 봄에 새끼를 낳는다. 그러니 가을에는 기름지게 낙지에 살이 오른다. 갯벌에서 낙지잡이를 할 때 봄 낙지는 줍는다고 하고, 가을 낙지는 캔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만큼 가을 낙지는 힘이 좋고 깊게 깊게 뻘 속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캐어 잡기가 힘들다는 의미다. 남자들은 갯벌에서 삽을 쓰고, 여자는 대개 호미를 쓴다. 허리가 부러지게 힘들다. 취재차 몇 번 따라나선 적이 있는데 일단 낙지가 있는 곳까지 가는 것도 벅차다. 썰물에 들어가는데, 갯벌이 차져서 발이 쑥쑥 빠진다. 엄청난 공포가 밀려오고, 이러다가 늪에 빠져 죽는다 싶다. 매일처럼 갯벌을 다니는 현지인들은 마치 이적을 보여주듯 가뿐하고 가볍게 걸어다닌다. 신기하다.
갯벌에서 낙지를 잘 잡는 이들은 남녀 불문하고 낙지 구멍을 쉽게 잘 본다. ‘브룻’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낙지가 새우와 조개 등 맛있는 먹이를 먹고 껍데기 등을 뱉어놓는 구멍이기도 하고 숨구멍이라고도 한다. 그 구멍을 중심으로 낙지가 아래에서 움직이는 방향을 예상하여 삽이나 호미를 팍팍 넣는다. 아래에서 낙지는 사람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재빨리 튄다. 순식간에 움직이며, 더 깊게 밑으로 숨어들기 때문에 사람도 그만큼 확실하게 잡지 않으면 놓친다. 낙지가 영리하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다.

영양제로 때로는 금지음식으로

낙지는 생태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1년생인지, 2년생인지도 확실치 않다. 낙지 값이 많이 비싸지만 인공양식하기에는 경제성이 없다. 오뉴월에 산란하는데, 한 배에 100개 안팎의 알밖에 낳지 않는다. 더구나 낙지는 좁은 곳에 함께 가둬두고 먹이를 주지 않으면 다른 놈의 다리를 잘라 먹어버린다.
낙지에 관한 기록 중에 <자산어보>에 정약전 선생이 쓴 내용이 아주 자세하다. 심지어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이것보다 더 풍부하다고 할 생태 연구도 드물다. 옛사람들은 낙지를 석거어나 낙제어라고 불렀다. 흥미로운 대목을 옮겨본다.
“낙지는 겨울철에 새끼가 태어나서 자기 어미를 먹는다…회나 국이나 포를 만들어도 맛이 좋다. 말라빠진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를 먹이면 곧 강한 힘을 갖게 된다고 하며…동의보감에는 소팔초어라고 했고, 이 생물은 성질이 순하여 맛이 좋고…일설에 의하면 낙제어(낙지)는 뱀과 교접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잘라 보아서 피가 흐르는 것과 비린내가 나는 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
암 낙지가 교미 후에 수컷 낙지를 먹기도 한다는 말도 있다. 또는 교미에 실패해도 성별을 불문하고 힘이 센 놈 쪽에서 약한 놈을 먹는다. 낙지란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어종이다. 물론 위에서 뱀과 교접 얘기는 근거가 전혀 없는 소문을 기록한 것일 테다. 낙지를 소에게 먹인다는 얘기는 농경에 소가 쓰이던 시절에는 실제로 현지에서 흔하게 있던 일이다. 한창 힘을 써야 하는 소가 농사에 지치면 낙지를 잡아서 산에서 너삼이라고 하는 약재를 캐다 섞어 먹였다는 증언을 현지에서 들었다. 낙지가 지금처럼 비싸지 않을 때였다. 낙지를 선조들이 자양강장 음식으로 본 것은 정확했다. 낙지는 아미노산이 많은데, 특히 타우린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우리가 피로회복제로 알고 있는 아무개 영양음료에 이 성분이 들어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보통 피로회복에 좋다는 비타민비군 복합영양제에도 들어 있다. 과학적으로 효험이 있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미군과 태평양전쟁을 하던 시기에 낙지 공출이 있었다. 낙지가 밤눈을 밝혀준다고 하여서 야간 전투를 벌이는 조종사들에게 공급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야시장비가 없던 때라, 밤눈은 전투의 중요한 요소였다. 낙지의 이름이 낙제어여서 해프닝도 많았다. 미역국은 미끄러진다고 하여 시험 전에 먹지 않았듯이, 낙지는 한자어 이름인 낙제를 쓰기 때문에 기피 음식이었다. 물론 두 낙제는 한자어가 다르다. 재미있는 것은, 예전 낙지가 많이 나는 전라도 해안에서는 낙지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소고기가 귀한 때였다. 절대 수험생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었을 것 같다.
시장에서 낙지를 고를 때는 역시 살아 있는 놈이 확실하기는 하다. 바다에서 그물이나 주낙으로 잡은 것보다는 갯벌에서 손으로 잡은 것이 맛있다고 하는데, 모양으로 구별할 수 없다. 죽은 낙지를 흔히 ‘기절낙지’라고 한다. 이는 원래 낙지를 살짝 숨을 죽여서 먹던 요리법에서 나온 말이었으나, 이제는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신경이 살아 있는 낙지’란 뜻으로 통용된다. 그러니까, 아직 싱싱한 낙지란 뜻이다. 죽은 낙지를 고를 때, 회색이나 흰색으로 보이는 것은 죽은 지 오래된 것일 확률이 높다. 갈색을 띠고 있는 것이 상대적으로 물이 좋은 놈이다.
요리하고 남은 낙지를 보관할 때는 그대로 냉장고나 냉동고에 넣는 것보다 한 번 데친 후에 처리하는 것이 좋다. 질겨지지 않는다. 낙지를 사 왔을 때는 손질을 잘해야 한다. 이물질이 많이 묻어 있으므로, 밀가루로 한 번 씻고 소금으로 가볍게 문질러 씻은 후 찬물로 여러 번 헹구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