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엄마의 첫 월급날이 되었다.

엄마의 첫 월급명세서를 받아보니, 알 수 없는 이상한(?) 글자가 눈에 띄었다. ‘국민연금’이라는 명목으로 일정 금액이 제외된 채 월급이 나온 것이다. 당시에는 국민연금이 시행된 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엄마와 주변 사람들은 국민연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렇게 조금씩 돈을 떼어 나중에 환갑이 넘으면 매월 연금으로 준다는 그 말이 일종의 신기루 같은 거짓말이라고 느껴졌다. 그저 얼마 안 되는 월급에 날강도처럼 뜯어가는 세금의 일종이라고만 생각했다. 매달 나가는 국민연금이 아까웠지만, 월급쟁이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맘이라도 편하게 세금이라 생각하고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었다.

공장을 그만두고 엄마는 자영업을 시작했다.

그런 엄마에게 귀찮은 고민거리가 생겼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는 국민연금 가입안내문과 국민연금 직원의 가입 권유 전화 때문이었다. 월급쟁이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일종의 세금처럼 내야 하는 국민연금이지만 엄마와 같은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게 국민연금은 선택사항처럼 느껴졌다. 사실 엄마는 국민연금이 조금도 내키지 않았다. 수년 전 공장에 다닐 때 국민연금이 일종의 쓸데없는 세금처럼 느껴졌던 이유도 있겠지만 당시에 돌았던 이상한 소문 때문이었다. 국민연금은 나라에서 눈뜨고 코 베어 가는 합법적인 갈취란 생각에, 엄마 주변에는 그렇게 떼일 돈인 국민연금을 자진해서 넣는 상인은 없었다. 그래서 장사가 힘들고,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엄마는 계속해서 국민연금 납부를 미뤘다. 하지만 계속되는 가입 권유에 엄마는 결국 백기를 들고야 말았다. 나라가 망하지 않고서야 당신이 낸 돈은 주겠지, 속는 셈 치고 국민연금을 넣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엄마도 국민연금 수급 나이가 되었다.

엄마의 생일이 다가오자 친절하게도 집으로 국민연금 신청 안내문이 날아왔고, 엄마의 휴대폰으로도 수급 신청 알림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오래전 국민연금은 떼일 돈이라고 걱정하던 엄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마치 소풍 전 어린아이처럼 몹시 설레하였다. 나는 엄마와 함께 인근 국민연금공단에 방문하였다.
직원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엄마는 다달이 국민연금이 입금될 계좌번호를 적었다. 엄마는 죽을 때까지 매달 그 통장으로 국민연금이 입금된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 후 직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직원분 역시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안다는 듯 웃으면서 기념선물로 국민연금공단 로고가 적힌 수건을 선물로 주었다. 별 것 아닌 작은 수건이 다시 한 번 엄마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딩동, 국민연금이 입금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딩동 문자 알림음과 함께 엄마의 통장에 국민연금이 입금되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엄마는 직접 당신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며 바로 통장을 들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통장에 찍힌 국민연금을 보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집에 와서도 믿어지지 않는 듯 통장을 보고 또 보며 마치 공돈이 생긴 것 같다며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