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안전자산 금, 국채, 달러

‘안전자산’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금이다. 아니나 다를까. 금값은 올해 들어서 26%가 뛰었다고 한다(7월 기준). KRX 금 시장에서 금값은 현물 1g당 7만 원을 넘은 지 오래다. 시세는 매일같이 최고기록을 세우고 있다고도 한다. 역시 불안할 때는 금 같은 안전자산이 최고인가.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금 시세가 지금 9년 만에 최고인 건 맞는데, 그동안 주가도 뛰었다. 최저점과 비교하면 금보다 주식값이 오히려 더 많이 올랐다. 불안할 때는 안전자산이라더니 그럼 주식이 안전자산이라는 말인가. 안전자산으로 금과 함께 꼽히는 대표적인 금융상품이 있다면 그건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다. 예전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미국은 여전히 미국이다. 무엇보다 달러를 찍어내는 나라다. 달러가 부족해서 부도가 발생할 염려는 접어놓아도 된다. 그래서 세상이 불안하면 미국 국채를 찾는 게 정상이고, 투자의 기본상식이다. 하지만 코로나19사태가 발생했던 초기,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주가가 폭락하고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국채값마저 주식값과 함께 떨어졌다. 상식대로라면 주식값이 떨어질 때 미국 국채값은 폭등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보통 투자자산을 위험한 수준에 따라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으로 구분한다. 안전자산은 위험이 없다고 해서 무위험자산이라고도 한다. 주로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없는 자산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달러와 채권, 금 등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반대로 주식 같은 위험자산은 수익이 불확실하다. 변동성 때문에 수익의 크고 작음을 쉽게 예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손실이 발생하기도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해야 한다. 그래서 흔히 현금 비중을 높이는 한편, 달러와 채권, 금 같은 이른바 ‘안전자산’ 투자에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한다. 확실히 안전자산은 시장이 불안할 때 투자자들이 선호한다. 수요가 몰리다 보니 위기일수록 안전자산의 가격은 오른다. 세상이 불안할수록 안전자산에 눈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안전자산은 정말 ‘안전’하기만 할까.
미국 국채 얘기부터 다시 해보자. 한 나라의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국가가 채무를 책임지는 주체라는 점에서 당연히 무위험자산이다. 그러나 채권 역시 가격의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발생한 미국 국채값의 급락 현상은 큰 충격이었다. 물론 알고 보면 역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은 대규모로 펀드 환매를 요구했다. 자산운용사들은 환매를 위해 서둘러 돈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회사채는 아예 팔리지 않았고, 주식값은 지나치게 떨어져 처분할 시기가 아니었다. 그나마 손해를 덜 보면서 팔 수 있는 건 역시 미국 국채였다. 그러니 너도나도 미국 국채를 내다 팔기 시작했고 결국 시장에 쏟아진 미국 국채값도 폭락할 수밖에 없었다. 주식가격이 변하듯 채권 역시 주식만큼은 아니지만, 가격이 변한다. 채권 역시 투자자들은 매매를 통해 손실을 볼 수도, 반대로 이득을 볼 수도 있다. 우리도 이미 경험을 했다. 한때 거의 반 토막까지 떨어져서 시중에 큰 물의를 빚었던 독일 국채 연계 DLF 상품들이 그렇다. 다른 채권도 아니고 독일 정부가 발행한 국채였다. 그리고 독일은 미국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신용도가 가장 높은 나라였다. 그런데도 채권값이 떨어져 연계상품들이 모두 손해를 볼 위기에 놓였다. 사실 채권을 만기까지 갖고 있으면 채무불이행의 위험은 없다.
그러나 가격이 변하면 채권 역시 매매 과정에서 손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안전은 채무불이행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이지, 결코 가격 변화에 따른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변동성이 있는 안전자산

금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전통적인 안전자산일 것이다. 조금 극단적인 얘기지만 따지고 보면 국채도 나라가 망해서 원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금은 다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미국 국채보다 금이 낫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금 역시 달러 가치는 물론이고 물가, 정치적 이슈 등 다양한 변수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상품이다. 금값의 역사적 추이를 보면 의외로 기복이 크다. 앞에서 지금 금 시세는 9년 만의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그 말은 이제야 겨우 9년 전 수준을 회복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금값은 세기말인 1999년 8월 온스당 251달러까지 급락했었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 1,000달러를 넘기 시작해 2011년 말에는 1,900달러까지 뛰며 정점을 찍었다. 그 후로는 다시 오랫동안 지지부진하다가 미국과 중국이 무역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하면서 오르기 시작해 이제야 2011년 수준이 됐다. 전통적으로 금은 공급보다는 수요 측면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우발적으로 발생한 정치적, 지정학적 이슈는 금 가격에 단기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도 금값 상승 요인이다. 세계 금 수요의 20%를 중앙은행 및 국제기구가 차지한다. 수요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취약한 변동성으로 인해 가격이 쉽게 오르고 내리는 금을 안전자산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도 금값은 오르기만 하지는 않았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세계의 주요 주식시장이 폭락했을 때 미국 국채와 같이 투자자들이 내다 판 것이 바로 금이었다. 이 때문에 국제 금 시세가 지난 2월 28일에는 2013년 이후 하루 동안의 하락으로는 가장 큰 폭인 5%까지 떨어졌었다.
마지막으로 요즘 전문가들이 보유를 권한다고 하는 미국 달러를 보자. 달러 보유는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위기가 발생하면 달러 예금도 많이 는다. 우리나라의 외화예금은 지난 5월 809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월 대비 27억 달러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위기상황에서 달러가 항상 안전자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경기 상황, 기준금리 등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비교 가능한 다른 나라 통화의 가치에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사실 지금 달러 가치는 3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지난 3개월 동안 미국 달러 가격은 5.1% 하락했고 7월에만 2.3% 떨어졌다. 무엇보다 미국이 그동안 너무 많이 찍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미국 연준이 푼 돈은 3조 달러가 넘는다. 이렇게 돈이 많이 풀렸는데 가치가 오르거나 유지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길게 보면 특별히 안정적인 투자대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코로나19 이후 가장 환율이 높아졌을 때는 지난 3월 19일의 1,285원이었다. 10년 전인 2010년 5월에도 1,275원이었다. 올라봐야 10년 전 수준이다.

자신에게 맞는 선택이 중요

사실 안전자산이라는 말은 편의적으로 쓰는 용어일 뿐이다. 안전자산의 기준은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게다가 안전자산이라고 해도 예를 들어 대출을 받아 투자한 경우는 쉽게 위험자산이 될 수 있다. 시간을 견디기 어렵고 외부의 충격에 취약한 구조로 바뀌기 때문이다. 투자상품을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으로 분류할 때 위험한 것은 안전자산이 가진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다. 투자론에서 정의하는 안전자산의 의미는 변동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저 외부충격을 비교적 덜 받을 뿐, 어떤 일이 생겨도 손실을 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안전자산 가운데에는 ‘강남 아파트’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때 얘기다. 사실 시장이 정말 공포에 빠지면 안전자산이란 없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경제 상황과 보유 자금을 충분히 고려해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맞다. 안전자산이라고 해서 언제나 ‘안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