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분명한 기원은 없지만,
아주 오래된 설렁탕 이야기
아주 오래된 설렁탕 이야기
서울(수도권)은 지금 전국, 아니 전 세계 음식의 격전장이다. 온갖 음식이 팔린다. 불과 사오십 년 전만 해도 서울 음식이란 빤했다. 문자 그대로 ‘서울 음식’을 많이 팔았다. 그중의 하나가 설렁탕이다. 파는 집도 많았고, 많이도 먹었다. 간편한 외식은 짜장면 아니면 설렁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젠 거의 사라졌다.
흔하지만 맛있는 음식
“다료에서 나와 벗과 대창옥으로 향하며 구보는 문득 대학노트 틈에 끼어 있었던 한 장의 엽서를(중략).
“어서 옵쇼. 설렁탕 두 그릇만 주…”(중략)
구보는 바지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어 그것을 씻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름 저녁에 먹은 한 그릇의 설렁탕은 그렇게도 더웠다.(후략)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설렁탕은 배달음식으로도 중요했다. 자전거가 생기고, 강점기 당시 배달문화의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냉면, 설렁탕이 아마도 조선사람들의 시키는 배달의 팔할은 차지했을 것이다. 이런 소설 대목이 나온다.
“설렁탕 그릇을 목판에 담아서 어깨에 메고 자전거를 달리던 사람이 다른 자전거와 충돌하여 둘이 다 나가넘어 져 설렁탕 그릇을 깨트리고는 끝이 없이 네가 잘못이거니 내가 잘못이거니(후략)”
(이광수 <흙> 1932)
아주 오래된 서울 음식
현재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100년이 넘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문설렁탕이라는 가게다. 이밖에도 잼배옥, 감미옥 등 아주 오랜 노포 설렁탕집이 건재하다. 이는 설렁탕이 서울의 주요 음식이었다는 증거 중의 하나다.
설렁탕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조선시대의 소고기 문제다. 이웃 중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세시대에 소는 일종의 경운기였다. 즉 일하는 짐승이었다. 그걸 잡아먹으면 생산성에 큰 타격이 온다. 식량을 거의 자급해야 하는 농경 국가에서 소는 개인 소유이지만 국가의 주요 자산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금살도감>이라는 단속 관청이 설치되기도 했다. 소 잡는 걸 단속한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의 소고기 사랑은 대단했다. 김홍도의 그림 <주막>에도 남자가 뚝배기를 기울여 맛있게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설렁탕이거나 해장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설렁탕과 해장국은 사촌이다. 둘 다 기본적으로 소뼈와 부산물을 우려서 만들기 때문이다.
소 잡기를 금한 조선 정부에서도 예외적으로 도살이 합법적인 경우가 있었다. 유교국가였으니 공맹과 선왕들에게 바치는 제사에는 소고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런 소를 잡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반촌’이었고 지금의 혜화동 일대라고 한다. 소 잡는 이들을 백정이라 불렀고, 그들은 소를 잡아주는 대신 부산물을 대가로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정들이 직접 소뼈를 우려서 탕을 끓여 팔았을 수도 있고, 식당에도 공급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설렁탕집의 역사는, 분명한 기원은 없지만 아주 오래된 서울 음식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설렁탕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조선시대의 소고기 문제다. 이웃 중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세시대에 소는 일종의 경운기였다. 즉 일하는 짐승이었다. 그걸 잡아먹으면 생산성에 큰 타격이 온다. 식량을 거의 자급해야 하는 농경 국가에서 소는 개인 소유이지만 국가의 주요 자산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금살도감>이라는 단속 관청이 설치되기도 했다. 소 잡는 걸 단속한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의 소고기 사랑은 대단했다. 김홍도의 그림 <주막>에도 남자가 뚝배기를 기울여 맛있게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설렁탕이거나 해장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설렁탕과 해장국은 사촌이다. 둘 다 기본적으로 소뼈와 부산물을 우려서 만들기 때문이다.
소 잡기를 금한 조선 정부에서도 예외적으로 도살이 합법적인 경우가 있었다. 유교국가였으니 공맹과 선왕들에게 바치는 제사에는 소고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런 소를 잡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반촌’이었고 지금의 혜화동 일대라고 한다. 소 잡는 이들을 백정이라 불렀고, 그들은 소를 잡아주는 대신 부산물을 대가로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정들이 직접 소뼈를 우려서 탕을 끓여 팔았을 수도 있고, 식당에도 공급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설렁탕집의 역사는, 분명한 기원은 없지만 아주 오래된 서울 음식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조선일보>1925년 8월19일자 ‘멍텅구리’의 ‘설렁탕 배달’ 편
선조들이 설렁탕을 즐겨 먹은 기록은 다양하게 남아있다
설렁탕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음식이었는지 옛 자료에 기록이 많다. 잡지 <별건곤>은 1929년 12월 자로 “괄세 못할 경성 설넝탕”이라는 제목으로 설렁탕 기사를 실었다.
“말만 들어도 위선 구수-한 냄새가 코로 물신물신 들어오고 터분한 속이 확 풀니는 것갓다. 멋을 몰으는 사람들은 설넝탕을 누린 냄새가 나느니 쇠똥냄새가 나느니 집이 더러우니 그릇이 不快하니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설넝탕에 맛을 드리지 못한 가련한 친구다. (중략) 설넝탕을 일반 하층계급에서 만히 먹는 것은 사실이나 제아모리 졈잔을 뻬는 친고라도 죠선사람으로서는 서울에 사는이상 설넝탕의 설녕설녕한 맛을 괄세하지 못한다.(후략)”
다른 표현도 재미있지만, 끝부분의 ‘설녕설녕한 맛’이란 대목이 웃음을 자아낸다. 설녕설녕한 맛의 설렁탕 한 그릇이 당긴다. 신문자료를 보니, 1933년 일제 관보 격인 <매일신보>에 경찰의 미담이 소개되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일부러 도둑질을 한 후 자수한 청년을 “부내 공평동의 대창옥이라는 설넝탕집에 직원으로 소개해서 자전거 배달부로 잘 살고 있다”는 기사다. 이 자료로 당시 번화가였던 종각부근 공평동에 설렁탕집이 여럿 있었고, 자전거 배달이 흥했다는 것도 엿볼 수 있다. 대창옥은 앞서 박태원의 소설에 나오는 그 식당일 것이다.
“말만 들어도 위선 구수-한 냄새가 코로 물신물신 들어오고 터분한 속이 확 풀니는 것갓다. 멋을 몰으는 사람들은 설넝탕을 누린 냄새가 나느니 쇠똥냄새가 나느니 집이 더러우니 그릇이 不快하니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설넝탕에 맛을 드리지 못한 가련한 친구다. (중략) 설넝탕을 일반 하층계급에서 만히 먹는 것은 사실이나 제아모리 졈잔을 뻬는 친고라도 죠선사람으로서는 서울에 사는이상 설넝탕의 설녕설녕한 맛을 괄세하지 못한다.(후략)”
다른 표현도 재미있지만, 끝부분의 ‘설녕설녕한 맛’이란 대목이 웃음을 자아낸다. 설녕설녕한 맛의 설렁탕 한 그릇이 당긴다. 신문자료를 보니, 1933년 일제 관보 격인 <매일신보>에 경찰의 미담이 소개되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일부러 도둑질을 한 후 자수한 청년을 “부내 공평동의 대창옥이라는 설넝탕집에 직원으로 소개해서 자전거 배달부로 잘 살고 있다”는 기사다. 이 자료로 당시 번화가였던 종각부근 공평동에 설렁탕집이 여럿 있었고, 자전거 배달이 흥했다는 것도 엿볼 수 있다. 대창옥은 앞서 박태원의 소설에 나오는 그 식당일 것이다.
한 때는 테이크아웃의 핵심 메뉴
설렁탕은 이처럼 일제강점기에도 크게 각광받았다. 해방과 6.25전쟁 후에도 설렁탕집은 서울에서 맹활약했다. 민족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었다. 소 생산량이 늘면서 불고기집과 해장국집도 장사가 잘 됐다. 도심인 청진동을 중심으로 성업한 청진옥, 한일관 같은 노포가 생겨난 배경이었다. 설렁탕이 대중식사로 인기 있었던 건 맛도 맛이지만, 빨리 먹을 수 있는 일종의 패스트푸드였기 때문이다. 주문하면 바로 나왔다. 늘 탕은 설설 끓고 있었고 주문과 동시에 밥을 담아 토렴하여 내주면 됐다. 다른 한식과 달리 설렁탕은 반찬도 거의 없었다. 설렁탕에는 깍두기라는 공식은 오래된 관습이다. 깍두기는 만들기도 편했고, 비용도 적게 들었다. 설렁탕은 배달이 많았다고 했는데, ‘테이크아웃’의 주요 아이템이었다. 코로나 시국에는 온갖 음식이 다 가능해졌지만, 설렁탕은 테이크아웃의 핵심이었다. 이유는 신분 문제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이미 설렁탕이며 장국밥이 시중에 인기가 있었는데 너저분한 가게에 상민과 함께 양반이 앉아서 탕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양반들은 배달이나 테이크아웃을 했다는 이야기다.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홍승면 선생(1927~1983)의 글에도 북촌의 집에 친구들이 찾아오면 설렁탕을 받아다가 집에서 끓여서 급하게 대접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설렁탕의 이름은 여전히 설이 많다. 설농탕(雪濃湯)도 한동안 같이 쓰였다. 눈처럼 희고 뽀얀 국물이란 의미다. 조선 왕조의 임금이 ‘선농단’에서 농사의 시범을 보이고, 소를 잡아 백성과 나누었다는 데서 선농단→설렁탕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그냥 ‘설렁설렁’ 끓는 탕의 의태어에서 왔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지금 표준어는 설렁탕이다.
설렁탕은 원래 소머리국밥과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일했던 기자 우스다잔운(1877~1956)의 글에는 설렁탕집을 묘사하면서 소머리가 진열된 식당 삽화를 넣었다. 설렁탕에는 꼭 뭐가 들어가야 한다는 법은 없었을 것이다. 대개 소 사골과 잡뼈, 잡고기, 허파와 지라같은 내장을 같이 넣는 것이 설렁탕 전성시대인 60, 70년대에 만들어진 표준 레시피로 보인다. 특히 지라는 꼭 넣어야 진짜 설렁탕이라고 주장하는 옛 식객들이 많은데, 현재는 지라 들어가는 가게는 매우 드물다. 신세대의 입맛에 내장은 그다지 친화적이지 않은 까닭이 아닐까. 점차 설렁탕은 뼈와 고기 중심으로 재편됐다. 수입 고기가 많아지면서 더 싸게 공급하는 가게도 많아졌다. 설렁탕은 노동하는 사람의 음식이었다. 빠르게, 쉽게, 맛있게, 영양가 있게 먹는 밥상이었다. 설렁탕을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은 수없이 많아졌다. 심지어 햄버거와 피자가 설렁탕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지만 설렁탕은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맛과 관습이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설렁탕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음식이었는지 알 수 있는 기사도 많다. 1940년에는 전쟁이 심하던 시기였고 물자도 부족했다. 그때 기사에는 식당 영업을 밤11시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있다. 단, 설렁탕집은 밤 일 하는 노동자를 위해 영업시간을 연장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또 해방 후인 1950년 2월에는 쌀이 부족하여 흰쌀밥 판매를 금지하자, 설렁탕집만은 제외해야 한다는 여론을 보도하고 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설렁탕집만은 그때처럼 특별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 양반들은 배달이나 테이크아웃을 했다는 이야기다.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홍승면 선생(1927~1983)의 글에도 북촌의 집에 친구들이 찾아오면 설렁탕을 받아다가 집에서 끓여서 급하게 대접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설렁탕의 이름은 여전히 설이 많다. 설농탕(雪濃湯)도 한동안 같이 쓰였다. 눈처럼 희고 뽀얀 국물이란 의미다. 조선 왕조의 임금이 ‘선농단’에서 농사의 시범을 보이고, 소를 잡아 백성과 나누었다는 데서 선농단→설렁탕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그냥 ‘설렁설렁’ 끓는 탕의 의태어에서 왔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지금 표준어는 설렁탕이다.
설렁탕은 원래 소머리국밥과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일했던 기자 우스다잔운(1877~1956)의 글에는 설렁탕집을 묘사하면서 소머리가 진열된 식당 삽화를 넣었다. 설렁탕에는 꼭 뭐가 들어가야 한다는 법은 없었을 것이다. 대개 소 사골과 잡뼈, 잡고기, 허파와 지라같은 내장을 같이 넣는 것이 설렁탕 전성시대인 60, 70년대에 만들어진 표준 레시피로 보인다. 특히 지라는 꼭 넣어야 진짜 설렁탕이라고 주장하는 옛 식객들이 많은데, 현재는 지라 들어가는 가게는 매우 드물다. 신세대의 입맛에 내장은 그다지 친화적이지 않은 까닭이 아닐까. 점차 설렁탕은 뼈와 고기 중심으로 재편됐다. 수입 고기가 많아지면서 더 싸게 공급하는 가게도 많아졌다. 설렁탕은 노동하는 사람의 음식이었다. 빠르게, 쉽게, 맛있게, 영양가 있게 먹는 밥상이었다. 설렁탕을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은 수없이 많아졌다. 심지어 햄버거와 피자가 설렁탕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지만 설렁탕은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맛과 관습이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설렁탕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음식이었는지 알 수 있는 기사도 많다. 1940년에는 전쟁이 심하던 시기였고 물자도 부족했다. 그때 기사에는 식당 영업을 밤11시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있다. 단, 설렁탕집은 밤 일 하는 노동자를 위해 영업시간을 연장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또 해방 후인 1950년 2월에는 쌀이 부족하여 흰쌀밥 판매를 금지하자, 설렁탕집만은 제외해야 한다는 여론을 보도하고 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설렁탕집만은 그때처럼 특별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늘 탕은 설설 끓고 있었고, 주문과 동시에 밥을 담아 토렴해 내주면 됐다
설렁탕에는 깍두기라는 공식은 오래된 관습이다
글_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