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살롱
사치보다
더 사치스러운 플렉스
더 사치스러운 플렉스
‘플렉스(Flex)’는 자신의 재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고가의 물품을 사는 데 돈을 쏟아 붓는 최근의 소비 경향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플렉스의 기원은 어느 래퍼의 개인방송에서 찾을 수 있다. 래퍼 염따가 동료 래퍼의 고급 차량을 들이받아 수리비를 마련하기 위해 티셔츠를 판매했다. 한데 이게 무려 20억 원어치나 팔리게 된다. 수리비를 제하고도 돈이 남아돌았다. 이에 그는 고가의 명품 소비에 돈을 탕진하는 모습을 중개한다. 놀랍게도 구독자들은 그의 소비 행위를 통해 대리만족한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의 사치품을 사면서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라고 으스대는 염따의 대사는 플렉스라는 용어가 유행하는 시초가 되었다.
플렉스는 사치를 통해
자신의 신분과 재력을 과시하는 속물적인 태도이다.
연출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사치
플렉스는 사치를 통해 자신의 신분과 재력을 과시하는 속물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기존의 사치가 자신이 실제로 가진 것에 상응하는 소비라면, 플렉스는 자신이 가진 것과 무관하거나 자신이 가진 것을 넘어서는 소비 행위라는 데서 차이가 있다. 생계에 필요한 소비를 극도로 절약하여 모은 돈으로 명품 브랜드의 가방이나 신발을 사는 것이 플렉스의 정석이다. 이러한 플렉스에는 오로지 연출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아가 연출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플렉스는 사치보다 더욱 사치스럽다.
인류 역사 초기의 사치는 부와 권력을 누리는 지배자들이 향연을 베풀며 자신의 세력을 경쟁적으로 과시하는 것이었다. 즉 과거에 부는 그저 개인의 소유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베풀고, 그로 인해 명예를 획득하는 교환의 구조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와서 궁정사회의 부가 왕 자신을 위한 즐거움을 쫓는 데에 쓰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 부와 사치는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삶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궁정 바깥에서는 신흥 부유층으로 급부상한 시민계급이 명예와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화려한 궁정문화를 모방하고 사치하여 고급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하게 된다.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시합이나 향연과 같은 공동체의 행사를 통해 ‘주기적’, 즉 간헐적으로 사치가 이루어졌다면, 근대 이후 개인의 삶으로 들어온 사치는 ‘영속적’인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개관에서 드러나듯 사치는 그 기원을 고대에서 찾아야 할 만큼 인류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플렉스 또 한 단순히 최근 젊은 세대의 철없는 행위로만 보아 넘길 수 없다. 다른 모든 소비를 줄여서 단 하나의 명품이라도 갖고자 하는 이런 열망은 체면을 우선하는 유교적 멘탈리티가 강고한 우리 사회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고, 동시에 명품 브랜드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여 전 지구적으로 경제적 식민화를 추구하던 서구 사회의 문화 전략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개관에서 드러나듯 사치는 그 기원을 고대에서 찾아야 할 만큼 인류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플렉스 또 한 단순히 최근 젊은 세대의 철없는 행위로만 보아 넘길 수 없다. 다른 모든 소비를 줄여서 단 하나의 명품이라도 갖고자 하는 이런 열망은 체면을 우선하는 유교적 멘탈리티가 강고한 우리 사회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고, 동시에 명품 브랜드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여 전 지구적으로 경제적 식민화를 추구하던 서구 사회의 문화 전략과도 무관하지 않다.
명품 브랜드의 영업 전략이 된 플렉스
왕족과 귀족의 삶을 모방한 시민계급의 사치는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고, 개인의 노동으로 축적한 부를 소비하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소비사회를 초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치라고 하는 행위에는 불평등한 사회를 반영하는 배타적 의식이 스며있다. 명품을 만들어서 보급하는 기업들은 이러한 상황을 명민하게 포착했다. 오늘날 여러 명품 브랜드는 초고가의 제품과 적정가의 제품을 공존시키는 것을 중요한 마케팅 전략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서 명품은 대중에게 충분히 쟁취할 수 있는 대상이 된 동시에 귀족적인 이미지 또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대중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명품을 구매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서 명품의 귀족적인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짓는다. 소비를 통한 사회적 구별 짓기는 아무런 제약 없이 누구나 자기 삶을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개인주의의 풍조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특히 소비에 있어서는 어떠한 규율이나 금기도 없기에, 대중은 그저 자기 재정상태와 자기 취향에 맞춰 자기 욕망의 총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내리면 되는 것이다. 재정을 졸라매어 평소 소비 수준을 훨씬 웃도는 명품을 구매하는 것은 따라서 최선의 선택이자 최고의 경험이 될 수 있다. 즉 플렉스는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저가 브랜드의 옷을 사 입고,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면서 명품 브랜드의 가방을 사거나 하는 플렉스는 소비자 자신이 처한 상황과 계급마저도 초월하는, 유사(pseudo, 사이비)-구원의 경험을 제공한다. 물론 이러한 경험에는 명품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 또한 작용하고 있다. 명품은 세속적 천국이고, 명품 소비는 세속적 구원이다. 헌신적 구매자에게 있어서 다른 모든 것과 맞바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자사 브랜드가 시간과 유행을 넘어서서 그 가치가 불멸하리라는 이미지를 형성한다.
대중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명품을 구매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서 명품의 귀족적인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짓는다. 소비를 통한 사회적 구별 짓기는 아무런 제약 없이 누구나 자기 삶을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개인주의의 풍조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특히 소비에 있어서는 어떠한 규율이나 금기도 없기에, 대중은 그저 자기 재정상태와 자기 취향에 맞춰 자기 욕망의 총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내리면 되는 것이다. 재정을 졸라매어 평소 소비 수준을 훨씬 웃도는 명품을 구매하는 것은 따라서 최선의 선택이자 최고의 경험이 될 수 있다. 즉 플렉스는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저가 브랜드의 옷을 사 입고,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면서 명품 브랜드의 가방을 사거나 하는 플렉스는 소비자 자신이 처한 상황과 계급마저도 초월하는, 유사(pseudo, 사이비)-구원의 경험을 제공한다. 물론 이러한 경험에는 명품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 또한 작용하고 있다. 명품은 세속적 천국이고, 명품 소비는 세속적 구원이다. 헌신적 구매자에게 있어서 다른 모든 것과 맞바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자사 브랜드가 시간과 유행을 넘어서서 그 가치가 불멸하리라는 이미지를 형성한다.
물신적 효과로서의 플렉스
따라서 플렉스는 일종의 기만술이다. 고가의 명품이 주는 물신적 효과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망각하고 은폐하기 때문이다. 다만 플렉스를 통해 명품을 소비할 경우, 그 물신성, 즉 스스로를 과시하고 숭배를 요구하는 우상적 속성이 훨씬 크다. 따라서 기만의 효과가 보다 오래 지속된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의 작가 닐 부어맨의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미래의창, 2007)는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이 소비하는 명품 브랜드를 비판하며 갖고 있던 명품 제품들을 모두 불태우고, 극심한 명품 금단 증상을 겪게 된다.
독일의 예술학자인 볼프강 울리히는 『모든 것은 소비다』(문예출판사, 2014)에서 닐 부어맨의 명품 화형식을 비롯하여 그가 겪은 명품 금단 증상 또한 명품 브랜드의 물 신적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명품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면 명품 화형식의 효과 또한 크지 않을 것이다. 명품 소비에 대한 닐 부어맨의 저항은 소비의 위력을 재확인하고 반증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는 말한다. 말하자면 닐 부어맨의 퍼포먼스는 ‘소비에 대한 저항을 소비’ 하고 있다.
볼프강 울리히는 삶을 연출하는 물신적 효과를 가져오는 소비 행위를 무조건 비판하는 것에 대해 거리를 두고자 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상품 물신에 대한 비판은 유일신교가 지배하는 서구 사회의 다신교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감과 연결된다.
고대 그리스나 인도처럼 다신교가 지배적이었던 곳에서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가장 필요한 신을 그때그때 소비하듯이 섬겼다는 것에 그는 주목한다. 물신에 무작정 등을 돌리거나 완전히 지배당하지 말고, 물신을 적절히 이용하라는 것이다. 지혜로운 소비자로 살자는 조언 정도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플렉스는 기본적인 생계에서 여가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국면을 소비에 점령당한 오늘날의 세계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생산을 통해 경제가 성장했던 과거와 달리 소비를 통해서 경제가 성장하고 지탱되는 오늘날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소비하지 않는 것은 죄악시된다. 이제 소비는 일종의 윤리이자 미덕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렉스는 사회적, 경제적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임시방편으로서 한동안 그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플렉스가 소비를 부추기되 소비할 수 있는 충분한 소득은 허용하지 않는 기형적인 불평등 구조를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독일의 예술학자인 볼프강 울리히는 『모든 것은 소비다』(문예출판사, 2014)에서 닐 부어맨의 명품 화형식을 비롯하여 그가 겪은 명품 금단 증상 또한 명품 브랜드의 물 신적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명품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면 명품 화형식의 효과 또한 크지 않을 것이다. 명품 소비에 대한 닐 부어맨의 저항은 소비의 위력을 재확인하고 반증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는 말한다. 말하자면 닐 부어맨의 퍼포먼스는 ‘소비에 대한 저항을 소비’ 하고 있다.
볼프강 울리히는 삶을 연출하는 물신적 효과를 가져오는 소비 행위를 무조건 비판하는 것에 대해 거리를 두고자 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상품 물신에 대한 비판은 유일신교가 지배하는 서구 사회의 다신교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감과 연결된다.
고대 그리스나 인도처럼 다신교가 지배적이었던 곳에서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가장 필요한 신을 그때그때 소비하듯이 섬겼다는 것에 그는 주목한다. 물신에 무작정 등을 돌리거나 완전히 지배당하지 말고, 물신을 적절히 이용하라는 것이다. 지혜로운 소비자로 살자는 조언 정도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플렉스는 기본적인 생계에서 여가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국면을 소비에 점령당한 오늘날의 세계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생산을 통해 경제가 성장했던 과거와 달리 소비를 통해서 경제가 성장하고 지탱되는 오늘날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소비하지 않는 것은 죄악시된다. 이제 소비는 일종의 윤리이자 미덕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렉스는 사회적, 경제적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임시방편으로서 한동안 그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플렉스가 소비를 부추기되 소비할 수 있는 충분한 소득은 허용하지 않는 기형적인 불평등 구조를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플렉스는 소비에 점령당한 오늘날의 세계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글_ 이은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