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에 죄송합니다. 잠깐만.”

고등학교 3학년, 어느 날과 변함없는, 아니 차라리 그랬어야 할 어느 오후. 담임선생님께서 황급히 교실로 들어오셨다. 알싸한 빈혈기를 느끼며 전화를 받은 나는 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리던 둘째 삼촌의 차를 타고 대학 응급실로 갔다. 알코올의 알싸함, 붉은 핏빛이 어울린 그곳은 입구부터 내 숨을 조여왔고,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간 그 끝엔 아버지가 누워, 아니 널브러져 계셨다.

뇌졸중이었다.

평소 술, 담배와 정육점에서 비계만 떼다 드실 정도로 기름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식습관이 결국 여기까지 이끈 것이리라. 병원의 초동 조치 미흡에 아무리 항의를 해도 돌아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위급상황이었다는 메아리였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없는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에 수긍보다는 체념한 채 가르랑거리는 아버지의 기도관에 쌓인 가래를 석션으로 제거하고, 엉덩이를 들어 손가락으로 변을 긁어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병원에 있은 지 열흘쯤 되었을까, 어머니는 고3인 나는 그래도 공부를 해야 한다며 억지로 등을 떼밀어 다시 학교로 보내셨다. 그 와중에 수능 날은 다가왔고, 나에게는 어머니의 도시락 대신 김밥집의 은박지로 말린 김밥 두 줄이 들려있었다.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았고 나는 국립대의 국어교육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아들, 너 땜에 내가 살아.”

어머니는 내 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는 결국 온전한 회복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고 퇴원을 권유받았다. 심근경색, 풍으로 인한 반신마비로 혀를 반만 쓸 수 있어 말도, 식사도 온전히 할 수 없는 아버지를 바라보자니 어머니가 홀로 감내했을 괴로움이 떠올라 절로 눈물이 났다.
이후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을 하셨고, 나는 그 헌신 덕에 시간을 쪼개가며 대학생활을 하며 임용시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무청의 연락이 잦아지고 더이상 군대를 미룰 수 없어 육군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어느 싸늘한 겨울이었을 거다.

제대를 얼마 앞둔 어느 날. 내무반으로 소대를 담당하는 선임하사가(평소 같으면 방송으로 전달했을 선임하사가) 어두운 낯빛으로 걸어들어왔다. 데자뷔일까. 고등학교 3학년 때 교실 문을 열던 담임선생님의 표정이 오버랩됐다. 이미 겪어 본 일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심연으로 주저앉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새벽부터 아버지를 부축해 대소변을 보게 하고 기저귀를 채워주시고, 아침 미음을 먹이시고, 손닿는 곳에 점심을 차려주시고 차로 30분 걸리는 식당으로 출근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경찰 이야기로는 도로 위 블랙아이스를 피하지 못해 중앙선을 침범한 상대차와 그대로 충돌하셨고, 여리디여린 어머니의 소형차는 그 충격을 감내하지 못하고 종이처럼 구겨졌다고 한다.
나는 어른처럼 곡을 했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그 후로 내 삶엔 언제나 비가 내렸다. 제대 후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그 집으로 돌아가니 어머니가 없는 그 썰렁한 공간에 아버지가 혼자 누워계셨다. 학교는 도저히 다닐 수 없었다. 휴학계를 내고 신체의 절반이 마비된 아버지의 수발을 들며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삶을 연명하는 수 밖에 없었다.
홀로 화장실에 가시다 욕실 바닥에 미끄러져 이빨이 부러지신 아버지를 부축해야 할 때, 점심으로 차려놓은 죽을 드시려다 침대에 온통 엎질러 매트리스 깊숙이 곰팡이가 드는 그런 상황에 직면할 때면 내 삶 자체를 지탱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그 누구보다 초췌해진 내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 간호는 걱정말라며 군대에서 휴가 나온 나를 버스를 태워 배웅해주시던 어머니의 그 주름진 얼굴이 떠올랐다. 지치기도 지쳤고, 힘들기도 힘들었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었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아버지만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나는 곧장 집 근처 슈퍼로 갔다. 그곳에서 갈탄과 투명테이프를 샀다. 그날 저녁은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을 실컷 먹고 아버지와 내가 누운 그 공간에 갈탄을 피울 생각이었다. 한 손에는 평소에 못 먹던 브랜드 통닭을, 한 손에는 갈탄과 투명 테이프가 든 비닐 봉다리를 들고 집 앞을 정처없이 한참 서성였다. 마음을 다시 잡고, 우리 집 빌라 현관으로 들어섰다. 우편함에 낯선 우편물이 보였다. ‘가스라도 끊겼나보지’하고 무심코 확인을 해보는데, ‘김O수’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내신 국민연금 덕분에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우편이었다.
‘어머니는 식당일을 하며 이렇게 삶을 준비하고 계셨구나.’
비록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빈궁하게 살아온 나와 아버지의 생활비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오니 소화를 제대로 못 시켜 영양이 부족했던 아버지는 그 좋아하던 두부도 못 드신 상태로 주무시는 건지 눈을 감고 누워계셨다. 그 옆에서 나는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이건 하늘이 주신 계시 같았다. 그날부터 난 다시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갖가지 어려움과 천근처럼 무거운 고생을 겪었지만, 결국 임용시험을 통과해 나는 교단에 서게 되었다. 비록 교단에 선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는 어머니의 곁으로 가셨지만, 한 손에는 통닭을 한 손에는 갈탄과 투명테이프를 들고 길을 서성이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만약 그날 우편함에서 어머니의 국민연금 청구 안내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었을까.
매일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이 세상은 사막이 될 것이다. 어두컴컴한 독 안의 쥐는 1주일 만에 죽지만 한 줄기 바늘구멍이라도 빛이 새어들어오는 독안의 쥐는 2주일을 더 산다고 한다. 내 삶의 한 줄기 빛을 기회로, 그 방향을 바꿔준 국민연금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

※ 국민연금 수기 공모전 수상작